1/15/2013

내방 쓰세요

[내방 쓰세요]

"저런 사람 낳고도 애 낳았다고 좋아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 데서나 술주정하는 사람, 신문에 나오는 범법자, 더 자주는 노숙자들과 마주쳤을 때 등등. 때로는 욕하고 싶고, 때로는 안타깝고 가슴 아파지면서도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누군들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 없었을까만, 한 해의 끝자락이고 너무 추운 겨울철이고 보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쉽게 자기성찰이나 산다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는 지하철 내내, 혼자 걷는 시간 내내, 정답 없는 인생철학에 붙잡혀 오만 가지 생각에 휘둘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노숙자이자 술주정뱅이가 아닐까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나도 양심적으로는 범법자가 아닌가? 문학적으로는 방랑자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중략...

작은 시골 학교 성탄절, 선생님은 어린이 연극에 장애를 가진 빌리에게도 무언가 시켜야 했다. 그러다 가장 간단한 한마디를 하면 되는 여관주인역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빌리는 오로지 성모마리아를 데리고 여관방을 구하러 온 요셉에게 "빈 방 있습니까"하면 "없어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다.

온 마을 학부모들이 다 모인 가운데 어린이들 연극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남편 요셉이 남산만한 만삭의 배를 안은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주인 빌리 앞에섰다. 요셉이 방 있느냐고 물었다. "없어요"라고 빌리의 대사가 나올 차례였다.. 그런데 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게 아닌가. 주민들은 빌리를 잘 알기 때문에 역시 모자라서 대답을 못하는 걸로 생각하고 아주 적은 목소리로 "없어요"라고 여기 저기서, 그리고 선생님도 커튼 속에서 속삭였다. 그래도 빌리는 연습 때와는 달리 만삭으로 배부른 마리아와 요셉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그대도 빌리는 한참을 그대로 말었이 선 채 생각에 잠겨있다가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만삭의 마리아와 남편 요셉에게 "내방 쓰세요"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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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약간 모자라는 빌리가 되고 싶고, 빌리의 따뜻한 목소리도 듣고싶어진다. 모자란 듯 보여서 오히려 더 생각깊은 빌리, 나부터 빌리만큼 모자라기를 바란다.

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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