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스 (Horus)
호루스(Horus)는 일종의 태양신의 명칭이며 줄곧 그리스신의 아폴론(Apollon)과 동일시 되어 왔다. 그리고 한 마리의 매나 매의 머리를 가진 신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인들은 '하늘'을 표현하는 말과 같은 음인(Hor)의 이름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높이 나는 매를 나타내고, 하늘을 좌우로 하여 태양과 달의 눈을 갖고 있는 한 마리의 매로 보았던 것이다.
매 신의 추종자들이 정착한 곳에서는 호루스에 대한 신앙이 어김없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 신의 역할이나 권한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변화되어 이집트의 수 많은 신들 가운데는 호루스신이 스물이나 될 정도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늙은 호루스, 즉 '하로에리스'나 기타의 태양신 계통의 매 신인 호르 베레데티, 에드푸의 호루스와 오시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 즉 아버지의 복수자인 '하르시에시스'와 구별하는 것이다.
이시스가 오시리스를 부활시키면서 주문의 힘으로 호루스를 잉태하여 부토와 가까운 케므니스의 섬에서 낳은 사정은 오시리스의 전설에 나온다. 이 호루스의 유년시대, 즉 그것은 '호르 파 케르드(어린 호루스)'라 불렀고 거기에서 하르포클라테스의 이름이 생겨났다.
히르포클라테스는 벌거숭이 아니면 보석류를 몸에 달았을 뿐 관자놀이에 늘어뜨린 땋은 머리 이외에는 머리가 거의 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때때로 그 아기는 젖을 내밀고 있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그 동작은 그리스인들이 겸손의 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지만, 훨씬 후세에 가서 침묵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동작이었다. 세트의 음모를 염려하여 고독 속에서 키워진 이시스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몹시 허약했지만 어머니의 마법 덕택에 여러 가지 위험이나 난폭한 동물들의 습격, 불, 전갈과 병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그 기록은 주술자들이 병자를 고치기 위해 사용한 주문의 문장을 만드는 법이나 쓰는 법 속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는 동안에 점차 성장한 호루스 앞에 종종 오시리스가 나타나 싸우는 법을 가르치며, 어서 빨리 세트와 싸워서 그 왕위 계승권을 되찾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영광스러운 복수 행위에서 하렌도테스라는 명칭이 생겼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복수자 호루스'를 뜻하는 호로 내지 이테프의 그리스어식 발음인 것이다.
호루스가 오시리스와 살해자 세트와 싸우는 모습은 에드푸의 신전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이 에드푸의 주신 베헤데티는 그 시대에는 이시스의 아들과 동화되어 있었떤 것이다. 한편 세트도 태양의 영원한 적 아포피스와 혼동되어 있었다. 그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띠 부분에는 호루스가 하르토메스(찌르는 사람 호루스)의 이름 아래 그 창을 상대방에게 찌르는 한편, '호루스의 추종자들'은 악어나 하마나 영양이나 그 밖의 티폰의 동물들 속에 숨으려고 도망치는 '세트의 추종자들'을 칼로 마구 찌르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신들은 질질 끄는 싸움을 중지시키려고 그 판가름의 마당에 두 적대자를 출두시켰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아들이라는 그의 조카가 서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으나, 호루스는 자기 출생의 정당함을 떳떳이 증명했다. 그래서 신들의 왕위를 빼앗을 자에게 그 계승권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린 후 호루스를 상하 두 이집트의 주인으로 선고했다. '두 나라를 합치는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 스마타우이의 음역(音譯)인 하르솜투스와 '두 땅의 주인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파 네브 타우이 등의 명칭이 생긴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이렇게 해서 호루스는 곳곳에 많은 신전을 세웠으며 그 신전에서 그는 원수 세트의 추종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 탈을 썼던 여러 가지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이집트 전체를 평화적으로 통치하고 국가신(國家神), 즉 국왕들의 선조로서 이집트에 영원히 머물렀다. 그리사여 국왕들은 '살아있는 호루스'의 칭호를 갖게 되었다.
오시리스와 어머니 이시스와 더불어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받은 호루스는 많은 성소의 3인조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되어, 혹은 왕자로서 혹은 신의 아들로 표시되었다. 예를들어 에드푸와 온보스에서는 호루스가 주신으로서 아내 하토르를 갖고 있었지만, 덴데라에서는 하토르가 어엿한 여주인이고 호루스는 여왕의 남편이라는 자격으로 주신이 된 데에 불과했다.
여러 신전에 나타나 있는 조건이나 그림의 표현 중에서는 신왕국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호루스는 세트와 협력해서 왕에게 왕관을 쓰도록 하고, 왕의 시중을 들거나 성소로 안내하는가 하면 두 나라가 통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오시리스의 살해자는 토트가 된다. 또 세트와 그의 일당과 싸우고, 오시리스를 위해 울고 그를 위해 시체를 땅에 묻는 의식을 행하는 호루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호루스가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오시리스'앞으로 안내하여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을 감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Ho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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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2010
6/14/2004
테프네트 (Tefnet)
테프네트(Tefnet)
테프네트(Tefnet)는 현실적인 인간상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인 본질로 생각된다. 헬리오폴리스에서 그녀는 슈의 누이동생이며 아내인 여신으로 되어 있다.
테프네트는 이슬의 여신 또는 비의 여신이었지만, 그녀 역시 태양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를 암사자의 모습이나 사자의 머리를 한 여자의 모습으로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스 인들은 아르테미스(Artemis)여신과 동일시 하고 있었다.
테프네트는 여러 문서를 통해서 슈의 창백한 모습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녀는 슈를 도와서 하늘을 받치고, 태양이 동쪽 산에서 떠오를 때 그와 더불어 갓 태어난 어린 태양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
테프네트(Tefnet)는 현실적인 인간상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인 본질로 생각된다. 헬리오폴리스에서 그녀는 슈의 누이동생이며 아내인 여신으로 되어 있다.
테프네트는 이슬의 여신 또는 비의 여신이었지만, 그녀 역시 태양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를 암사자의 모습이나 사자의 머리를 한 여자의 모습으로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스 인들은 아르테미스(Artemis)여신과 동일시 하고 있었다.
테프네트는 여러 문서를 통해서 슈의 창백한 모습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녀는 슈를 도와서 하늘을 받치고, 태양이 동쪽 산에서 떠오를 때 그와 더불어 갓 태어난 어린 태양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
6/13/1989
[이집트] 세트(Set)
[이집트] 세트(Set)
그리스인이 티폰(Typhon)이라고 부른 세트(Set)는 멸시의 호칭이며, 드디어는 악의 정령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 곳곳에서 선의 정령에 대립되는 존재가 되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세트는 게브와 누트의 아들로서 에파고메노스 3일에 출산 예정일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의 배를 찢고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난폭하고 잔인한 그는 흰 살결과 붉은 털을 가졌다. 그 붉은 털은 이집트 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당나귀의 털에 비유했다.
형인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몰래 왕관을 탐낸 세트는 왕위를 빼앗기 위해, 원정을 나갔던 오시리스의 개선을 축하하는 뜻으로 멤피스에서 거행된 대축전을 이용했다. 세트는 공범자 72명의 결심을 확인한 후 오시리스를 그 향연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세트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관(棺)을 가져오게 하여, 그 관에 꼭 알맞게 들어가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오시리스는 세트의 흉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 상자에 들어가 누웠다. 그러자 공범자들은 재빨리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질 한 후 그것을 나일강에 던졌다. 상자는 파도를 타고 뮈블로스까지 흘러갔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시스는 그것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 그런데 세트는 델타의 늪 지대에서 달빛 아래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형의 시체임을 확인하자 그것을 열 네 토막으로 잘라 들판에 뿌렸던 것이다.
세트는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왕국의 주인 자리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내인 네프티스에게 버림받은 것만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네프티스는 오시리스의 가족 편이 되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신들도 제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 세트의 잔인성을 피해 각각 동물의 몸 속에 숨어 있었다. 그 동안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는 델타의 저습지에사 성장하여 아버지 오시리스의 살해자 세트에게 복수하고, 그에게서 왕좌를 빼앗게 되었다.
세트는 오시리스 신화 중에서는 비옥한 토지, 관개수, 빛 따위와 대립되는 불모의 사막, 건조, 암흑 등을 인격화한 영원한 적대자로 표현되고 있다. 모든 창조와 선은 오시리스로부터 생겨나고, 모든 파괴와 악은 세트와 연결된다. 그러나 원시시대에는 그 신의 악한 성격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었다. 피라밋에 남아 있는 옛 문서에는 그가 오시리스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노(老)호루스의 형제로 되어 있으며, 그들 둘의 치열한 싸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 싸움은 신들의 판가름을 받게 되어 승리는 호루스에게로 돌아가고 세트는 사막으로 추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세트가 호루스의 형제가 아니라 그의 숙부이며 오시리스의 영원한 적이된 것은 훨씬 후대에 가서 오시리스의 전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고, 두 호루스가 혼동된 이후의 일이다.
세트는 처음에는 상이집트의 지방신이었던 것 같으며, 이윽고 매 신의 숭배자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두 형제신의 싸움이라는 신황에 의해 가려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고왕국 및 중왕국 시대의 부조(모양,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긴 조각)는 왕 밑에서 나란히 포로를 끌고 가는 세트와 호루스의 모습, 또는 결합의 관념을 뜻하는 부호의 둘레를 상하 두 이집트의 여러 식물로 결합시키고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러한 모습에 의해 스마 타우이, 즉 두 나라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힉소스(시리아 지방의 종족으로, 기원전 1750년경 이집트에 침입하여 약 200년간 지배했음)의 점령기에 세트는 새 지배자에 의해서 그들의 주신인 스테크와 동일시하게 되어 그 수도인 아바리스에 신전이 세워졌다.
또한 신왕국 시대에 들어서면 라메스 2세의 부왕은 세트, 즉 '세트의 집안'으로 자칭하고 라메스 2세 자신은 서슴지 않고 '세트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자칭하기에 이르렀다. 오시리스의 숭배자들은 '선한 존재'의 살인자에 대한 신앙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묘의 벽면에 새겨진 세트라는 저주받은 모습을 모두 없애고, 스스로를 세트의 집안이 아닌 오시리스의 집안으로 자칭했다.
오시리스의 살해자가 그 벌을 정말로 받게 되는 것은 기원전 10세기 중엽 제 22왕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세트의 모습을 한 조각상은 파괴되고, 부조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며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애버렸다.
드디어 세트는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서도 내쫓겨 사악의신이 되어 과거 상이집트의 지방신은 신들의 적, 일종의 악마로까지 몰락해버렸다.
나귀, 영양 등 사막의 동물들은 악어, 돼지, 전갈, 하마 따위와 더불어 세트를 따르는 자로 되어 있으며, 이 동물들의 몸 속에 사악의 신이나 그 부하가 승리자 호루스의 습격을 피하려고 숨어 들어가려는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일찍이 세트가 호루스의 눈에 상처를 입힌 것도, 또 오시리스의 혼이 숨어 있다는 달을 매달 습격하여 뜯어먹는 것도 검은 돼지탈을 쓰고 하는 짓이라 한다.
세트는 우뚝 서서 앞 부분이 네모지게 잘린 귀, 길고 꼬부라진 코, 끝 부분이 둘로 갈라져 도저히 도로 붙일 수 없는 딱딱한 꼬리를 가진 공상적 동물로 표현되었다. 보통 그것을 '티폰의 동물'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깨 위에 네발 짐승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그리스인이 티폰(Typhon)이라고 부른 세트(Set)는 멸시의 호칭이며, 드디어는 악의 정령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 곳곳에서 선의 정령에 대립되는 존재가 되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세트는 게브와 누트의 아들로서 에파고메노스 3일에 출산 예정일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의 배를 찢고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난폭하고 잔인한 그는 흰 살결과 붉은 털을 가졌다. 그 붉은 털은 이집트 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당나귀의 털에 비유했다.
형인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몰래 왕관을 탐낸 세트는 왕위를 빼앗기 위해, 원정을 나갔던 오시리스의 개선을 축하하는 뜻으로 멤피스에서 거행된 대축전을 이용했다. 세트는 공범자 72명의 결심을 확인한 후 오시리스를 그 향연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세트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관(棺)을 가져오게 하여, 그 관에 꼭 알맞게 들어가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오시리스는 세트의 흉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 상자에 들어가 누웠다. 그러자 공범자들은 재빨리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질 한 후 그것을 나일강에 던졌다. 상자는 파도를 타고 뮈블로스까지 흘러갔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시스는 그것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 그런데 세트는 델타의 늪 지대에서 달빛 아래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형의 시체임을 확인하자 그것을 열 네 토막으로 잘라 들판에 뿌렸던 것이다.
세트는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왕국의 주인 자리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내인 네프티스에게 버림받은 것만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네프티스는 오시리스의 가족 편이 되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신들도 제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 세트의 잔인성을 피해 각각 동물의 몸 속에 숨어 있었다. 그 동안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는 델타의 저습지에사 성장하여 아버지 오시리스의 살해자 세트에게 복수하고, 그에게서 왕좌를 빼앗게 되었다.
세트는 오시리스 신화 중에서는 비옥한 토지, 관개수, 빛 따위와 대립되는 불모의 사막, 건조, 암흑 등을 인격화한 영원한 적대자로 표현되고 있다. 모든 창조와 선은 오시리스로부터 생겨나고, 모든 파괴와 악은 세트와 연결된다. 그러나 원시시대에는 그 신의 악한 성격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었다. 피라밋에 남아 있는 옛 문서에는 그가 오시리스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노(老)호루스의 형제로 되어 있으며, 그들 둘의 치열한 싸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 싸움은 신들의 판가름을 받게 되어 승리는 호루스에게로 돌아가고 세트는 사막으로 추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세트가 호루스의 형제가 아니라 그의 숙부이며 오시리스의 영원한 적이된 것은 훨씬 후대에 가서 오시리스의 전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고, 두 호루스가 혼동된 이후의 일이다.
세트는 처음에는 상이집트의 지방신이었던 것 같으며, 이윽고 매 신의 숭배자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두 형제신의 싸움이라는 신황에 의해 가려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고왕국 및 중왕국 시대의 부조(모양,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긴 조각)는 왕 밑에서 나란히 포로를 끌고 가는 세트와 호루스의 모습, 또는 결합의 관념을 뜻하는 부호의 둘레를 상하 두 이집트의 여러 식물로 결합시키고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러한 모습에 의해 스마 타우이, 즉 두 나라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힉소스(시리아 지방의 종족으로, 기원전 1750년경 이집트에 침입하여 약 200년간 지배했음)의 점령기에 세트는 새 지배자에 의해서 그들의 주신인 스테크와 동일시하게 되어 그 수도인 아바리스에 신전이 세워졌다.
또한 신왕국 시대에 들어서면 라메스 2세의 부왕은 세트, 즉 '세트의 집안'으로 자칭하고 라메스 2세 자신은 서슴지 않고 '세트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자칭하기에 이르렀다. 오시리스의 숭배자들은 '선한 존재'의 살인자에 대한 신앙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묘의 벽면에 새겨진 세트라는 저주받은 모습을 모두 없애고, 스스로를 세트의 집안이 아닌 오시리스의 집안으로 자칭했다.
오시리스의 살해자가 그 벌을 정말로 받게 되는 것은 기원전 10세기 중엽 제 22왕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세트의 모습을 한 조각상은 파괴되고, 부조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며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애버렸다.
드디어 세트는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서도 내쫓겨 사악의신이 되어 과거 상이집트의 지방신은 신들의 적, 일종의 악마로까지 몰락해버렸다.
나귀, 영양 등 사막의 동물들은 악어, 돼지, 전갈, 하마 따위와 더불어 세트를 따르는 자로 되어 있으며, 이 동물들의 몸 속에 사악의 신이나 그 부하가 승리자 호루스의 습격을 피하려고 숨어 들어가려는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일찍이 세트가 호루스의 눈에 상처를 입힌 것도, 또 오시리스의 혼이 숨어 있다는 달을 매달 습격하여 뜯어먹는 것도 검은 돼지탈을 쓰고 하는 짓이라 한다.
세트는 우뚝 서서 앞 부분이 네모지게 잘린 귀, 길고 꼬부라진 코, 끝 부분이 둘로 갈라져 도저히 도로 붙일 수 없는 딱딱한 꼬리를 가진 공상적 동물로 표현되었다. 보통 그것을 '티폰의 동물'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깨 위에 네발 짐승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9/10/1979
라 (Ra, Egyptian)
라 (Ra)
라(Ra)는 '창조자'라는 뜻이며, 하늘의 절대적 지배자인 태양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그의 성소(聖所)는 북부이운에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 도시의 사제들은 태양신 라는 벤벤이라는 돌에 오벨리스크의 형태로 처음으로 몸소 발현했다고 믿고 있으며 그 돌은 헤트벤벤, 즉 오벨리스크관(館)이라는 사원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사제들의 말에 따르면 본래 태양신은 태초의 대양인 '눈(Noun)'의 품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신은 그 광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든지 하얀 연꽃 속에 숨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대양위에 우뚝 일어서서 '라'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라는 젊고 활력이 넘치던 시절에는 신들이나 인간들을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젊음과 활력은 빛을 잃어갔다. 그가 떨리는 입언저리에서 줄곧 침을 흘리는 노인으로 묘사된 기록도 남아있다. 훨씬 뒤에 라가 노쇠해지자 이시스(Isis)가 라의 신비로운 이름을 물려받고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게 된다.
태양신이 인간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 하늘로 올라간 이후, 그는 거기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낮의 열 두 시간을 쪽배를 타고 그의 적 아포피스의 공격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의 제국을 누빈다.
아포피스는 하늘의 나일강에 사는 거대한 구렁이인데, 그가 태양신의 쪽배를 뒤엎었을 때가 바로 일식(日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포피스는 언제나 라의 부하들에게 몰매를 맞고 결국은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라에게 있어서 밤의 열 두 시간은 더욱 위험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항상 그 위험을 무릅쓰고 동굴에서 동굴로, 그의 빛을 필요로 하는 저승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다닌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암흑의 괴로움과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라는 매일 아침 어린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설도 있다. 그는 낮 열 두시까지는 성인이 되었다가 점차 노인이 되어 밤에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탄생한 지 얼마 안되는 연꽃 위에 있는 왕자의 모습으로, 불을 토하면서 신의 적을 무찌르는 성스러운 독사 우라에우스에게 둘러싸여 태양의 원반을 머리에 얹고 앉아 있거나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는 밤을 누비며 다니는, 죽은 태양을 상징하는 양의 머리를 지닌 남자의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역시 성스러운 뱀 우라에우스에게 둘러싸인, 원반을 머리에 얹은 매의 머리를 갖고 있는 인물로도 묘사된다. 그것이 바로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이집트의 지배자 라 하라크티이다.
그 밖의 라의 모습이나 수는 대단히 많으며 라 자신이 그것을 자칭하고 있다. 왕의 무덤 입구에 태양에 대한 기도문이 새겨져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름이 75개나 된다.
창조자로서, 세계의 지배자로서 널리 알려진 라는 다른 신들까지 차례차례 동화시켜 고왕국 시대 이후 국왕들로부터 가장 숭배받는 신이 되었다. 그리고 국왕들은 스스로 '라의 아들'로 자처했다.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라는 '루디트디디트'라는 여자와 정식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다시 그 자신이 태어났다. 루디트디디트는 제 5왕조 초기의 세 왕의 아내가 된 여자이지만, 라는 그 왕이며 아들이기도 했다. 즉 그가 지상으로 돌아가서 왕비와 결혼할 때마다 국왕이 태어난 것이다.
태양신 라는 헬리오폴리스의 멋진 성소에서 돌로 표시된 태양의 광선, 즉 거대한 오벨리스크의 모습으로 예배를 받고, 성스러운 소 '므네비스'로도 변신했으며, 때로는 '베누'라는 새로도 변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폐허와 제 12왕조의 세누세르트 1세에 의해서 세워진 오벨리스크뿐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라(Ra)는 '창조자'라는 뜻이며, 하늘의 절대적 지배자인 태양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그의 성소(聖所)는 북부이운에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 도시의 사제들은 태양신 라는 벤벤이라는 돌에 오벨리스크의 형태로 처음으로 몸소 발현했다고 믿고 있으며 그 돌은 헤트벤벤, 즉 오벨리스크관(館)이라는 사원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사제들의 말에 따르면 본래 태양신은 태초의 대양인 '눈(Noun)'의 품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신은 그 광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든지 하얀 연꽃 속에 숨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대양위에 우뚝 일어서서 '라'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라는 젊고 활력이 넘치던 시절에는 신들이나 인간들을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젊음과 활력은 빛을 잃어갔다. 그가 떨리는 입언저리에서 줄곧 침을 흘리는 노인으로 묘사된 기록도 남아있다. 훨씬 뒤에 라가 노쇠해지자 이시스(Isis)가 라의 신비로운 이름을 물려받고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게 된다.
태양신이 인간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 하늘로 올라간 이후, 그는 거기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낮의 열 두 시간을 쪽배를 타고 그의 적 아포피스의 공격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의 제국을 누빈다.
아포피스는 하늘의 나일강에 사는 거대한 구렁이인데, 그가 태양신의 쪽배를 뒤엎었을 때가 바로 일식(日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포피스는 언제나 라의 부하들에게 몰매를 맞고 결국은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라에게 있어서 밤의 열 두 시간은 더욱 위험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항상 그 위험을 무릅쓰고 동굴에서 동굴로, 그의 빛을 필요로 하는 저승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다닌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암흑의 괴로움과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라는 매일 아침 어린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설도 있다. 그는 낮 열 두시까지는 성인이 되었다가 점차 노인이 되어 밤에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탄생한 지 얼마 안되는 연꽃 위에 있는 왕자의 모습으로, 불을 토하면서 신의 적을 무찌르는 성스러운 독사 우라에우스에게 둘러싸여 태양의 원반을 머리에 얹고 앉아 있거나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는 밤을 누비며 다니는, 죽은 태양을 상징하는 양의 머리를 지닌 남자의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역시 성스러운 뱀 우라에우스에게 둘러싸인, 원반을 머리에 얹은 매의 머리를 갖고 있는 인물로도 묘사된다. 그것이 바로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이집트의 지배자 라 하라크티이다.
그 밖의 라의 모습이나 수는 대단히 많으며 라 자신이 그것을 자칭하고 있다. 왕의 무덤 입구에 태양에 대한 기도문이 새겨져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름이 75개나 된다.
창조자로서, 세계의 지배자로서 널리 알려진 라는 다른 신들까지 차례차례 동화시켜 고왕국 시대 이후 국왕들로부터 가장 숭배받는 신이 되었다. 그리고 국왕들은 스스로 '라의 아들'로 자처했다.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라는 '루디트디디트'라는 여자와 정식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다시 그 자신이 태어났다. 루디트디디트는 제 5왕조 초기의 세 왕의 아내가 된 여자이지만, 라는 그 왕이며 아들이기도 했다. 즉 그가 지상으로 돌아가서 왕비와 결혼할 때마다 국왕이 태어난 것이다.
태양신 라는 헬리오폴리스의 멋진 성소에서 돌로 표시된 태양의 광선, 즉 거대한 오벨리스크의 모습으로 예배를 받고, 성스러운 소 '므네비스'로도 변신했으며, 때로는 '베누'라는 새로도 변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폐허와 제 12왕조의 세누세르트 1세에 의해서 세워진 오벨리스크뿐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6/13/1974
네페르툼 (Nefertoum)
[이집트] 네페르툼 (Nefertoum)
그리스어로는 아프티미스인 네페르툼(Nefertoum)은 멤피스의 3대신인 세크메트와 프타의 아들이며, 그리스인들에 의해 프로메테우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이것은 이집트의 헤파이스토스인 아버지 프타가 불의 발견자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흔히 그는 '코펫시'라는 굽은 칼을 가진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머리 위에는 하얀 연꽃을 얹고 그 위에는 뿌리 모양의 줄기가 두 개 뻗어 있고, 때로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 위에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고양이와 동물의 머리를 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인 사자의 여신 세크메트에서 유래한 것임에 틀림없다.
'청년 아툼'을 뜻하는 그의 이름은 그가 헬리오폴리스의 신 아툼(Atoum)의 화신이었음을 명백하게 입증해주는 것이다. 밤이되면 태양이 몸을 감춘다는 연꽃에서 새벽녘에 태아나는, 다시 말해 새롭게 태어나는 아툼인 것이다.
원래 네페르툼은 하이집트의 기원(起源)의 신이었으며, 어머니인 세크메트가 프타의 아내가 됨으로서 프타의 자식 자격으로 이쿠테스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까지 멤피스 최고의 3대 신 가운데 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어로는 아프티미스인 네페르툼(Nefertoum)은 멤피스의 3대신인 세크메트와 프타의 아들이며, 그리스인들에 의해 프로메테우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이것은 이집트의 헤파이스토스인 아버지 프타가 불의 발견자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흔히 그는 '코펫시'라는 굽은 칼을 가진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머리 위에는 하얀 연꽃을 얹고 그 위에는 뿌리 모양의 줄기가 두 개 뻗어 있고, 때로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 위에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고양이와 동물의 머리를 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인 사자의 여신 세크메트에서 유래한 것임에 틀림없다.
'청년 아툼'을 뜻하는 그의 이름은 그가 헬리오폴리스의 신 아툼(Atoum)의 화신이었음을 명백하게 입증해주는 것이다. 밤이되면 태양이 몸을 감춘다는 연꽃에서 새벽녘에 태아나는, 다시 말해 새롭게 태어나는 아툼인 것이다.
원래 네페르툼은 하이집트의 기원(起源)의 신이었으며, 어머니인 세크메트가 프타의 아내가 됨으로서 프타의 자식 자격으로 이쿠테스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까지 멤피스 최고의 3대 신 가운데 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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