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북특사와 손자병법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입력 : 2013.04.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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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청와대 '지하벙커'로 불리는 위기관리상황실에 싱글 침대 3개가 배달됐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휘하 비서관들이 쓸 침대였다. '안보 위기'를 맞아 김 실장과 관련 비서관들은 최근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간 채 청와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은 하루 3끼를 다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군과 국가정보원 등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들을 종합해 대북 전략을 수립하는 게 김 실장의 일이다.
김 실장이 전략적 판단을 내릴 때 '바이블'로 삼는 것이 바로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 13편의 3619자를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의 매니아다. 지난 7일에는 대북특사 파견론을 일축하며 '무약이청화자, 모야'(無約而請和者, 謀也: 약속이 없는데 화해 등을 청하는 것은 모략이 있는 것)라는 손자병법 구절을 인용했다.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에 '고상병벌모(故上兵伐謀), 기차벌교(其次伐交)'라는 구절이 있다. 최상의 병법은 적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벌모'이고, 차선은 적을 고립시키는 '벌교'라는 것이다. 이에 비춰볼 때 우리는 북한에게 '벌모'를, 북한은 우리에게 '벌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도발시 강력 대응'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미군이 B-2 폭격기 등 최첨단 전력을 불러온 게 바로 '벌모'다.
북한의 '벌교' 전략은 전쟁 위기감을 높여 한국에서 "북한에게 양보하라"는 여론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정부를 국회와 국민들로부터 고립시켜 결국 정부가 먼저 고개 숙여 손을 내밀게 하려는 것이다. 바로 박 대통령이 말한 '위기를 조성한 후 타협과 지원의 악순환'(9일 국무회의)이다. 이는 대북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과의 '동맹 균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뉴욕채널 등을 통한 비공식적 대화는 언제든 필요하다. 그러나 공식적인 대북특사 파견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절묘한 줄타기는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에 일관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의 의연한 대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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