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2013

[데스크칼럼]'상실의 시대'에 그어진 숱한 밑줄들

[데스크칼럼]'상실의 시대'에 그어진 숱한 밑줄들

입력시간 | 2013.04.02 07:01 | 이승형 부장

[이데일리=이승형 사회부장] “한번 읽어봐. 책 볼 정신도 없겠지만. 누가 알아? 도움이 될는지.”

1989년 가을 어느 날, 친구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지금은 이미 너덜해진 책 표지엔 ‘상실의 시대’라는, 어딘가 사무적인 느낌의 제목이 씌여 있었다.

당시 나는 첫 사랑을 잃은 아픔과 군 입대를 앞둔 두려움, 그러니까 과거와 미래의 무게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술로 허기를 달래던 청춘이었다. 세상의 모든 우울함이 비가 되어 나에게만 내린다고 생각했던, 못난 시절이었다.

결과적으로 책은 위안이 됐다. 흔한 연애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아우라가 있었다. 하루키 특유의 글쓰기 방식, 개인과 세상을 연결짓는 현실 감각, 그리고 등장 인물들이 쏟아내는 대사의 진정성. 내겐 이후 어떤 형태로든 인생의 변곡점이 생겼을 때 이 책을 들춰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수많은 밑줄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 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 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난 늘 굶주려 있었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랑을 듬뿍 받아보고 싶었어. 이젠 됐어, 배가 터질 것 같아, 잘 먹었어, 그럴 정도로. 한 번이면 되는 거야, 단 한 번이면.”

“비스킷 통에 여러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걸 자꾸 먹어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통이라고.”

책의 원제 ‘노르웨이의 숲’이 왜 엉뚱한 제목으로 둔갑했는지 이해하기까지는 그닥 오래 걸리지 않는다.(사실 원제는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 산 가구(Norwegian wood)’에서 비롯됐지만 하루키는 이를 ‘숲’으로 ‘고의적’ 오역을 했다) 오히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더 적절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늘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남녀간의 사랑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성이 결여되고, 상식이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다. 슬픈 일이다. 더 슬픈 건 많은 이들이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줄줄이 낙마한 장차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며, 고위 공직자들의 ‘억’소리 나는 재산을 보며, 건설업자의 성 접대 의혹 사건을 보며, 예의 그 밑줄들을 떠올린다. 우리 서민들의 비스킷 통엔 그닥 좋아하지 않는 비스킷만 들어 있다. 소외,배신, 실망, 분노라는 이름의 비스킷. 어쩌면 비스킷이 아예 없을 수도.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비스킷은 ‘망각’이다. 비이성적인,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져 아파해도 그 때뿐, 우리는 쉽게 잊는다. 그런 일이 쌓이다 보면 종국엔 모든 비현실적 상황에 둔감해 진다. 그래서 전 국정원장의 ‘정권 안보’ 의혹 사건이나 17초짜리 청와대 대독 사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러려니’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것이 망각이 가져다 주는 가장 끔찍한 비극의 결말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마음껏 슬퍼한 끝에 무엇인가를 배우지도 못했고, 설사 배웠다 하더라도 또다른 슬픔에 대처하지도 못했다.

지난주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로마 교외의 소년원을 찾아 아이들의 발을 씻겨줬다. 그리고 “자기가 아무리 높더라도 남을 섬길 줄 알아야 한다”며 “여러분의 발을 씻기는 것은 내가 여러분을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교황들과는 달리 전용차를 타지 않고 셔틀버스를 이용하며, 교황을 상징하는 금색 망토와 모자를 착용하지 않는 등 스스로 서민 곁에 내려섰다. 이런 것을 흔히 진정성이라 부른다. 입으로는 서민 정치 운운하면서 사익을 위해 직위를 남용하고,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보고, 논문을 표절해도 아랑곳없이 ‘한 자리’ 더 해먹으려 하는 뻔뻔한 자들과는 격이 다르다.그래서 또 밑줄을 고쳐본다. 늘 굶주려온 우리로서는 새 교황과 같은 지도자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아보고 싶다. 배가 터질 정도로.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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