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014

[경향의 눈]그들만의 사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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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그들만의 사자성어
이종탁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한자 공부를 강요받는다. 등고자비(登高自卑), 마부정제(馬不停蹄), 역풍장범(逆風張帆), 도남지익(圖南之翼). 설명이 없으면 뜻을 알기 어려운 낯선 한자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예를 든 네 개의 네 글자는 대구시 중·서·달서·수성구가 공식 발표한 2014년 사자성어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쳤겠지만 대구지역 신문에는 예외없이 보도됐을 터이니, 이들 한자가 지금쯤 대구시민들 머릿속에 맴돌고 있을지 모르겠다.

대구의 구청들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들어 중앙정치권의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기업에서는 여전히 사자성어 발표를 연말연시의 통과의례처럼 여긴다. 염홍철 대전시장(유시유종·有始有終)과 최문순 강원지사(출곡천교·出谷遷喬), 이시종 충북지사(충화영호·忠和嶺湖)처럼 단체가 아니라 단체장이 발표하는 곳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거다 싶은 문구를 찾아내기까지 손에 침 발라가며 책장 뒤적인 공무원의 노고가 숨어있을 것이다. 동주공제(同舟共濟·인천시), 호시마주(虎視馬走·충주시), 승풍파랑(乘風破浪·익산시), 성윤성공(成允成功·태백시) 같은 말을 책에 의존하지 않고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들은 신문에 한 줄 실리기 위한 목적으로 뭔가 그럴듯한 말을 물색했겠지만, 네 글자를 받아보는 시민의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새해의 사자성어라고 하는데 단체장 자신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인지, 공무원들에게 알리는 시정 방침인지, 아니면 시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지 모호하기도 하다.

관즉득중(寬則得衆). “사람에 너그러우면 인심을 얻는다”는 풀이와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놓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현 정권이 너그럽지 못하다는 말을 에둘러 하려는 건지 모르겠으나 왠지 뜬금없고 어이없다는 느낌이다. 그가 현 정권 또는 국민을 향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기는 한 건가.

그러고보니 연말연시 사자성어 발표는 이명박 정부 때 가장 성행했던 것 같다. MB는 당선자 시절부터 매년 올해의 화두라며 시화연풍(時和年豊)이니 일로영일(一勞永逸)이니 부위정경(扶危定傾)이니 일기가성(一氣呵成) 같은 한자어를 내놓았다. 그 바람이 정치권에도 번져 여야 대표는 물론 웬만한 중진급 정치인들까지 경쟁적으로 사자성어를 발표하곤 했다. 다난흥방(多難興邦·박희태), 청정무애(淸淨無碍·정몽준), 상창난기(上蒼難欺·정세균), 절전지훈(折箭之訓·정동영) 같은 말들이 횡행했다. 하지만 그많은 사자성어 중에 지금 국민이 기억하는 것은 거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새해 첫날이면 신년 휘호를 발표했다. 18년 집권기간에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권력을 장악한 첫 해에는 혁명완수(革命完遂), 이후에는 ‘자립’ ‘중단없는 전진’ ‘유비무환(有備無患)’ ‘근검절약 국론통일’ 같은 말들을 특유의 붓글씨로 써서 신년 화두로 제시했다. 정치적 목적성이 짙게 배어 있다고는 해도 단어 자체는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쉬운 표현들이다. 좋든 싫든 국민들 뇌리에 오래 남아있다. 박정희 흉내를 낸 듯한 MB의 사자성어는 그 점에서 명백한 실패작이다.

근래 발표되는 사자성어 중 가장 권위있는 것은 교수신문이 선정하는 한자어다. 이 신문이 2001년부터 한 해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등을 선정해 발표하자 국민들은 촌철살인이라며 무릎을 쳤다. 그러자 교수신문은 2006년부터 연말용 외에 새해용 사자성어도 따로 선정했다. 처음엔 약팽소선(若烹小鮮), 민귀군경(民貴君輕), 제구포신(除舊布新) 같은 알듯말듯한 문구를 내놓더니 올해엔 전미개오(轉迷開悟)라는 한자를 제시했다. ‘미망에서 돌아나와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한자를 추천한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는 “선불교 용어를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문외한으로서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만…”이라고 했다(교수신문). 대학 교수도 우연히 알게 된 글자가 ‘새해의 공부 한자’로 우리 앞에 제시된 셈이다.

공부를 하려고 교보문고에 가 보았다. 그런데 서가에 꽂혀 있는 두꺼운 사자성어 사전에도 이 단어는 나와 있지 않다. 글자 하나하나는 크게 낯설지 않아도 네 글자가 합쳐지면 사전에도 안 나오는 희귀어가 되는 것이다. 이런 희귀 사자성어를 왜 굳이 골라야 하나, 알기 쉽게 ‘대오각성(大悟覺醒)’이라고 하면 안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미개오라는 네 글자가 올해 신문에 거의 보도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교수들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년 벽두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경구(警句)를 주고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언중(言衆)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현학적 수사(修辭)는 소모적인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 사자성어든 신년휘호든 울림이 있으려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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