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014

[배득렬 교수의 고사성어]待 價 而 沽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1230

[배득렬 교수의 고사성어]待 價 而 沽
<기다릴 대><값 가><말이을 이><팔 고> 높은 가격에 살 사람을 기다림

2014년 01월 07일 (화) 21:48:39

[중부매일]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역사상 중국인의 정치, 철학, 역사, 교육, 문화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꼽으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서슴없이 孔子(공자)라고 답할 것이다.

孔子의 본명은 孔丘(공구), 字(자)는 仲尼(중니)이다. 공자는 魯國(노국)(현재의 산동성) 平昌鄕(지금의 曲阜)에서 BC 551(魯 襄公 22년)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孔子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그는 20대 후반에 委吏(위리: 지금의 국고 관리자)와 사직리(축산의 책임자) 등의 微官末職(미관말직)을 지냈으나 이렇다 할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그 관직도 魯國(노국)에 정변이 일어나 계속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主君(주군)이었던 昭公(소공)을 쫓아 齊國(제국)으로 피신하게 됐다. 제국의 景公(경공)이 공자의 학식과 풍모에 반하여 그에게 封地(봉지)를 내려 신하로 삼고자 했으나 당시 齊國의 宰相(재상)이었던 안영이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공자가 다시 魯國으로 돌아왔으나 經國大業(경국대업)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제자들 양성에 힘쓰다 73세 되던 해(魯(노) 哀公(애공) 16년, B.C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늘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던 꿈이 컸던 인물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학식과 재주를 겸비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論語(논어)·子罕(자한)' 짧은 글에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孔子(공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리려 했으나 자주 한계에 부딪쳤을 뿐 중용되지는 못했다.

한번은 학생이었던 子貢(자공)이 孔子에게 "만일 여기에 훌륭한 옥이 있다면 이를 괘 안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가격을 내는 사람을 찾아 파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孔子가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지금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沽之哉! 沽之哉! 我待價者也)" 라고 대답했다. '待價而沽'는 이 고사에서 나왔다.

三國時代(삼국시대), 劉備(유비)의 책사 諸葛孔明(제갈공명)처럼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인물이 참 많다.

孔子 역시 자신을 알아봐주는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렸다. 그래서 스스로 "나는 지금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공자처럼 위대한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안목이 있는 魯國의 지도자는 없었다. 魯國은 결국 齊國에 밀려 春秋五覇(춘추오패: 춘추시대에 강성했던 5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

甲午年(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대한민국에 많은 인재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길 기원해본다. 국가의 성장은 결국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일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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