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이오는 구름에게 안겨 황홀경에 빠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엘리트들은 고전고대의 문예를 동시대 문화 속에서 부활시키려 했다. 특히 관능적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주피터와 이오]는 이탈리아 만토바 공작 페데리코 곤자가의 주문으로 그려졌으며, 이 그림은 화가 코렛지오가 제작한 ‘주피터 연애사건’ 네 가지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 곤자가 공작은 만토바를 방문한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에게 이 작품을 기념으로 선물했다. 주피터는 모든 금지된 사랑을 그 자신의 몸을 변형시켜 성취한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레다의 경우 백조로, 다나에의 경우 황금비로, 미소년 가니메데를 납치할 때는 독수리로 변신했다. 이오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구름으로 변신한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이 이야기를 화폭에 담을 때 주노와 주피터가 소를 놓고 옥신각신 흥정하거나, 아르고스를 잠들게 하려고 머큐리가 피리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반면, 코렛지오는 이 사건의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순간인 주피터가 구름이 되어 이오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름과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오는 열락과 황홀경에 빛나고 있고, 이오를 껴안은 구름자락은 손처럼 보이며, 구름 속 어렴풋이 이오에게 키스하는 주피터의 얼굴이 보인다.
반 햄켄 [이오를 위협하는 주노와 제우스]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58cmx120cm,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궁 |
헨드릭 콜치우스 [머큐리로부터 아르고스의 눈을 받는 주노] 보이만스 미술관, 로테르담 |
구름과의 사랑, 암소에서 여신으로
이오 이야기는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의 도입부에 언급되는 일화로, 몇몇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공포와 코미디를 오가는 유치한 틴에이저 로맨스물 같기도 하다. 주피터는 이오에게 반해 구애한다. 뜬금없이 때아닌 구름이 자욱히 깔리자 주노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구름은 이오를 감싸안고 욕망을 성취하지만, 주노가 다가오자 주피터는 재빨리 이오를 암소로 바꿔버린다. 주노: ‘이 예쁜 것은 뭐지?’ / 주피터: ‘당신도 알다시피, 그녀는 방금 대지에서 솟아났다오.’ / 주노 :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면, 내가 가져서 안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여신은 예쁜 암소를 자신의 것으로 빼앗는다. 그리고나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은 주노는 소로 변한 이오에게 아르고스라 불리는 거인을 감시자로 붙여 놓는다. 그러나 포기할 주피터가 아니다. 이번에는 갈잎 피리를 든 목자로 위장한 머큐리를 아르고스에게 보낸다. 머큐리는 피리를 연주하고 자장가를 불러 아르고스를 잠들게 한다. 마지막 눈을 감았을 때 머큐리는 검으로 아르고스의 목을 벤다. 아르고스의 몸에서 떼어낸 수 백개의 눈은 주노의 공작깃털에 장식으로 붙였다. 아르고스에 대한 부분은 다음 번 루벤스의 그림을 가지고 좀 더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루벤스 [머큐리와 아르고스] 1635~1638년 패널에 유화, 87,5x63cm, 드레스덴 고미술관 |
야콥 반 캉펭 [머큐리, 아르고스와 이오] 1630년경 캔버스에 유화, 204cmx193cm, 마우리츠 하위스, 헤이그 |
암소가 된 이오
이오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다른 갈래로 갈라져 버린다. 아르고스가 죽고 그의 눈은 주노의 공작 꼬리에 붙는다. 그런데 사건이 이렇게 전개되어 가는데도 이오는 여전히 암소로 머물러 있다. 이 얼마나 불행한가. 구름에게 겁탈당한데다가 동물이 되버린 이오. 그녀는 주노가 쉬파리를 보내 괴롭히자 광기에 빠져 이오니오스 만을 건넌다(그야말로 ‘광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고 이어서 그리스 반도와 지중해 전역을 헤메고 다닌다. 실제로 어디를 헤매고 다녔을까? 아폴로도루스 [신화집]에 보면 소가 된 이오가 방랑한 긴 여정이 나온다. 실제 지명과 대조해가며 이오의 여정을 진지하게 추적해보려고 하면, 신화이기에 망정이지, 그 긴 여정이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너무 길어 다 언급할 수 없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이오가 헤매고 다녔다고 해서 그리스 반도에 이오니아 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여정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폼페이 이시스 사원의 이시스-오시리스 벽화 ‘이집트에서 환영받는 이오’,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
반 햄켄 [이시스로 존경받는 이오]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20cmx120.3cm,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 |
그렇게 암소가 되어 그리스 전역을 헤매고 다니던 이오는 이집트로 건너가 비로소 사람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오는 아이귑토스인들 즉, 오늘날의 이집트인들에게 여신 이시스 신상을 만들어 주었고, (아마도 암소 시절에 발굽으로 연습해 익혔을)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그 자신이 이시스 여신으로 칭송되며 숭배 받았다고 한다. 오비디우스 뿐 아니라 아폴로도루스, 플루타르크, 디오도루스 또한 이 이야기를 언급하는데, 특히 사람으로 돌아와 이시스 여신이 된 이오가 이집트인에게 ‘법’을 내리고 오시리스와 결혼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이오-이시스의 시련, 고난의 여정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는 그의 형제 세트(seth)의 모함으로 살해당해 여러 조각으로 토막난다. 이시스는 그 조각을 모아 피라미드 안에 묻는다. 이시스는 남편의 남근을 제외한 모든 조각을 모을 수 있었다. 오시리스의 남근을 찾지 못한 까닭은 세트가 남근을 나일강에 던져 개 먹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화가 코렛지오 묘사의 문헌적 전거는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페트라르카의 시에 대한 베르나르도의 주해 중 ‘주피터는 이오를 구름으로 덮었다’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사상가 레오네 에브레오(Leone Ebre)와 문인 보카치오의 이탈리아어 번역본도 그림의 전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작자미상 [무릎꿇고 있는 이시스] BC 332년 |
루카 지오르다노 [신들의 사자 이시스] 1684~1686 프레스코화,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 |
이오-이시스 신화는 그리스-로마와 이집트라는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유사한 신화가 각각 다르게 발생했거나, 다른 신화들 처럼 역사 속에서 구전되면서, 여러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는 가운데 합쳐지거나 갈라지며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살해 당한 남편을 살리고자 그의 시신을 찾아 이집트를 헤매는 이시스의 여정은 잃어버린 남편 혹은 아내를 찾는 프시케와 오르페우스의 여정, 학문적 지식과 궁극의 지혜를 얻는 고난의 여정에 비유된다. 암소로 변해 지중해,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헤매고 다니는 이오-이시스의 가혹한 시련은 그 긴 여정의 모험적 속성으로 봤을 때, 권력의 체현자인 여신 주노보다는 프시케 유형에 가깝다. 실제로 이들의 시련을 프시케와 연결지어 언급한 연구들도 많이 있다. 프시케는 이시스와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남편을 되찾기 위해 막강한 권력자(비너스)의 연단을 견뎌내야 했으며, 심지어는 사자(死者)의 세계까지도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프시케의 시련 – 남성 영웅에 필적하는 여인들
스틱스 강물을 떠와야 한다거나, 지하 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의 미의 비밀을 얻어와야 하는 시련은 사실상 살아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으로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프시케는 여러 번 죽기를 시도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탑에서 뛰어내리려 하기도 하고, 입에 동전을 물고 지하세계에 내려가 뱃사공 카론을 만나기도 한다. 이는 고대 장례풍습의 묘사이다. 다름이 아니라 죽었다는 말이다. 프시케는 여러 번 죽음에 상당하는 일을 겪거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남편의 시신을 찾아 이집트 전역을 떠도는 이오-이시스의 고난은 개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과정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는 즉, 죽기까지 해야만 하는 프시케의 힘든 여정과 닮아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단이 그녀들에게 남성 영웅에 필적하는 ‘인간영혼의 안내자’ 프쉬코폼포스(Psychopompos) 자격을 부여한다.
루카 지오르다노 [사람들에 의해 숭배받는 프시케] 1692~1702년 동판에 유화, 57,5cmx68,9cm, 로얄 콜렉션 |
루카 지오르다노 [벌로 프시케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비너스] 1692~1702년 동판에 유화, 58,1cmx68,9cm, 로얄 콜렉션 |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집트에서 주신으로 숭배되는 오시리스는 형제에게 살해당하고, 그 몸은 조각나 이집트 전역에 흩어진다. 이시스는 그 시신을 찾아 온 이집트를 헤멘 끝에 이어 붙인다. 이러한 이시스의 여정은 죽음의 지하세계까지 내려간 프시케의 험난한 여정에 비유된다. 이시스는 신성한 ‘지혜’이자 사랑과 진리의 주 여신이다. 또한 천의 이름을 가진 여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비주의적 해석의 입장에서 보면 수 백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의 참수는 이집트에 풍요를 가져오는 나일강의 범람(치수)과 관계되며, 강의 범람을 결정짓는 달의 변화, 그 우주의 신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A.D. 2세기에 씌어진 이래 고대 뿐 아니라 르네상스 시기에도 널리 읽혔던 플루타르크의 [이시스와 오시리스]에서 오시리스는 태양, 이시스는 달에 비유되고 있다.
글 최정은 / 미술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에서 회화 및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책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동물, 괴물지, 엠블럼]이 있다.
발행일 201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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