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2011

Steve Jobs Speech at Stanford Graduation

Steve Jobs Speech at Stanford Graduation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들 중 한 곳인 이 곳을 졸업하는 여러분과 오늘 함께 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 번이 제게는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와 보는 것입니다. 오늘 전 여러분에게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뿐 입니다. 대단한 게 아니죠. 단지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이야기는 점들이 연결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대학을 6개월 만에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대학을 그만 두기 전에 약 18개월 정도를 청강생으로 있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이 모든 것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젊은, 결혼하지 않은 대학원생이었는데, 그녀는 저를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대학을 졸업한 부모에게 입양되기를 매우 강력하게 희망했고, 그래서 제가 태어나면 한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죠. 하지만 제가 세상에 튀어나왔을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여자 아이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결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전화로 '우리가 예상치 않았던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혹시 이 아이를 원하는가?'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 부모님은 '물론이죠!'라고 하셨다지요. 저의 생모는 나중에서야 제 어머니가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제 아버진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최종 입양 서류에 사인하길 거부하셨지요. 그녀는 제 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내겠노라고 약속한 몇 달 후에서야 비로소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그리고 17년 후 저는 정말 대학엘 갔습니다. 하지만 전 순진하게도 거의 스탠포드 대학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제 노동자계급의 부모님이 모은 저축 모두가 저의 학비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전 대학에서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제가 그것을 펼쳐가는데 대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는 부모님들이 평생 일해서 모은 돈을 써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기로 했지요. 그 당시 그것은 무척 겁나는 일이었지만 뒤 돌아 보면 그 결정은 제가 이제껏 제 인생에서 내린 결정들 중 가장 잘 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대학을 그만두자 제가 흥미 없어 하던 필수 과목들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고 재미있어 보이는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이 모든 것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전 기숙사 방도 없어서 친구들의방에 끼어 바닥에서 잤습니다. 그리고 콜라 병을 수집해서 병 당 5 센트씩 환불 받아 먹을 것을 마련했습니다. 일요일 저녁마다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10킬로미터)을 걸어서 하리 크리슈나 사원에 가서 일주일에 한번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전 이걸 정말 좋아했어요. 이렇게 제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써 우연히 마주치게 된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을 매길 수 없을 큼 귀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리드 대학은 그 당시 아마도 미국에서 최고로 습자법을 잘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교내에 있는 모든 포스터나 모든 서랍의 색인은 아름답게 수작업으로 쓰여져 있었답니다. 전 대학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일반 과목들은 들을 필요가 없었지만 이 것을 어떻게 하는 건 지 배워보려고 습자법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지요. 저는 활자체에 장식선을 붙이는 방법, 서로 다른 글자들의 조합에서 간격을 조절하는 법, 그리고 무엇이 멋진 글자들을 정말로 멋지게 하는 지에 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주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미묘해서 과학이 잡아낼 수 없는 방식의 것이었고 전 이게 아주 매혹적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이 중 그 어떤 것도 제 인생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란 희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십 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있었을 때, 그 모든 것이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맥 속에다 그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지요. 그것은 멋진 활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죠.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다양한 서체도 결코 갖지 못했을 것이고 균형 있게 이루어진 폰트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우즈는 맥의 복사품이니 컴퓨터에서 이런 것들이 없었을 수도 있겠죠. 제가 대학을 중퇴하지 않았다면 전 습자법을 청강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컴퓨터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멋진 글자체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학시절에 점들을 미래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을 되돌아 보면 이건 매우 분명합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씀드리지만 점을 미래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과거로 연결할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점들은 미래로 어떻게든 연결 된다는 것을 말이죠.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심지, 운명, 인생, 전생 그 무엇이든지요. 이런 접근법을 이용해서 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었죠.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제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패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전 운이 좋았답니다.- 인생 초반기에 제가 사랑하는 일을 찾았으니까요. 워즈와 저는 제가 스무 살 되던 때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답니다. 우린 열심히 일했고 차고에서 둘이 하던 애플은 10년 내에 4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20억달러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최대의 역작인 맥킨토시를 일년 전에 출시했고 저는 30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전 해고 당했어요. 어떻게 제가 창업한 회사에서 제가 해고 당하죠? 애플이 성장하자 우린 저와 함께 회사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고용했어요. 그리고 처음 얼마간은 회사도 잘 됐지요. 그러나 곧 우리가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젼은 멀어져만 갔고 결국은 분쟁이 일어났어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죠. 그래서 서른 살에 저는 쫓겨났어요. 아주 공개적으로 쫓겨났어요. 성인이 된 후 제가 집중하던 일은 사라져버렸고 전 참담했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몇 달 동안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제 느낌엔 제가 이전 세대의 기업가를 망하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았어요.- 제게 넘겨준 바톤을 떨어트렸던 거죠. 전 데이빗 팩커드(HP 창업자)도 만나고 밥 노이스(인텔 창업자)도 만났고 사업을 망친 일을 사과하려 했어요. 전 아주 널리 알려진 실패자여서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려고까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제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전 아직도 제가 한 일을 사랑하고 있었죠. 애플에서 일어난 사건이 절 조금도 바꾸지 못했어요. 전 거부당했지만 아직도 사랑했던 거죠.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그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애플로부터 해고당한 것은 제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을 하고 있다는 무거운 부담은 초심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죠. 이런 상황이 절 자유롭게 해 주어서 제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맞게 됩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 후 오년동안 넥스트와 픽사를 창업하고 제 아내가 된 멋진 여자와 사랑하게 됩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를 창조하게 되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됐습니다. 더 기가막힌 결말은 애플이 넥스트를 샀고 전 애플로 복귀했고, 넥스트에서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최근 성공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전 멋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확언하건데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약의 맛은 지독했지만 제 생각엔 이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었죠. 가끔 인생이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을 잃지는 마십시오. 확언하지만 제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은 제가 하고있는 일을 사랑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는 것을 찾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일도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일은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요. 진정으로 만족하는 방법은 멋진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멋진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가슴으로 느껴지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것을 발견하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멋진 관계가 그러하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질 겁니다. 그러니 찾을 때까지 계속 살펴보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제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겁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열 일곱 살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었는데 '만약 매일같이 이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어느날엔 가는 네가 확실히 맞는 날이 있을 것이다.' 전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그래서 그 후 삼십 삼 년간 매일아침 거울을 바라다보며 내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며칠동안 그 답이 '아니다.'로 나오게 되면 제가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제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기억은 제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만나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것을 - 모든 외부적인 기대, 자존심, 황망함이나 실패에 대한 공포 - 이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사라져버리고 단지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만 남게 되기 때문이지요. 죽으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뭔가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책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빨가벗었습니다. 당신의 가슴이 바라는 바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일년 전쯤 저는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곱시 삼십분에 스캔을 했는데 제 췌장에 종양이 있더군요. 전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가 제게 말하길 이 종류의 암은 거의 대부분 치료가 불가능하고 삼개월에서 육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요. 제 의사가 제게 조언하길 집으로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하는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죽음을 준비하라는 이야기였어요. 즉 향후 십년 동안 애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몇 달 안에 다 하란 말이었죠. 모든 일들을 용의주도하게 해 놓아서 가족들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해주라는 거였죠. 즉 작별인사를 하라는 거였죠.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하루종일 그 진단과 살았습니다. 그날 저녁 생체검사를 했는데 내시경을 내 목으로 밀어 넣어서 위를 거쳐 소장까지 넣고 췌장에 바늘을 꼽아 종양에서 몇 개의 세포를 떼어냈습니다. 저는 차분했고, 같이 있던 제 아내가 이야기 하길 현미경으로 조직을 보던 의사가 제 종양은 아주 희귀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수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곤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고요. 전 수술을 받았고 이젠 멀쩡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이 제가 죽음을 가장 근접해서 대면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향후 수 십 년간 이것이 가장 근접한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인생 경험을 하면서 여러분께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죽음을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 이는 죽음이 유용하지만 순수하게 지적인 개념이라는 것 이상일 겁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그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은 사람 조차도 거기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종착역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한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꼭 그래야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삶이 만들어 낸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삶을 변화시키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우고 새로운 것들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멀지않은 미래에 여러분은 서서히 낡은 것이 되고 폐기될 겁니다. 너무 드라마틱해서 죄송합니다만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빠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결과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잡음 같은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자기 내부의 목소리가 매몰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용기를 내서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십시오. 이것들은 당신들이 진정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있습니다. 그 외의 것들이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젊은 시절에 '전 지구 카탈로그'란 멋진 출판물이 있었는데, 이건 우리 세대의 일종의 바이블이었죠. 이것은 만든 이는 스튜어트 브랜드이고 이 곳 멘로 팍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시적인 감각으로 이 잡지에 생명을 불어넣었답니다. 1960년대 후반이니 컴퓨터라든지 데스크탑 인쇄 같은 게 없던 시절이죠. 그래서 이 잡지는 타자기와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어졌어요. 이건 일종에 종이로 된 구글 같은 거였죠.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에 말이죠. 이상적이었고 참신한 도구와 멋진 말들로 넘쳐 났었죠.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스튜어트와 그 팀은 여러 호의 전 지구 카탈로그를 냈는데 주어진 호를 다 내고 나서 마지막 호를 냈어요. 이때가 1970년대 중반이니 제가 여러분 나이 때죠. 마지막 호의 뒷면은 이른 아침 시골 길의 사진이었는데 여러분들이 모험을 좋아한다면 히치하이킹을 해봄 직한 그런 도로 였죠. 그 아래 이런 글귀가 있었어요.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 같이 살아라.' 이것이 그들이 사라져가며 남긴 이별의 메시지였습니다.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 같이 살아라. 그리고 저는 항상 제 자신이 그러길 바랐습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 시작하려는 여러분께 축원하노니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 같이 살아라.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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