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상 관중(管仲)의 지혜가 그립다
입력시간 | 2014.03.26 18:07 | 조철현 기자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있었던 일이다. 최초로 패자(覇者)의 지위를 인정받아 천하를 호령한 제(齊)나라 왕 환공(桓公)은 나라 곶간이 텅 비자 세금을 늘릴 방안을 고민했다. 환공은 어느 날 재상 관중(管仲)에게 인두세(人頭稅)를 걷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관중은 백성들이 가족 수를 줄여 신고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럼 가축 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자고 제안하자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가축을 도살할 것이라고 또 반대했다.
낙담하는 환공에게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는 게 좋겠습니다. 제사를 지내도록 장려하는 것이지요. 제사를 모시려면 곡식과 과일, 고기, 생선 등이 필요하게 되고 값도 훨씬 뛸 것입니다. 이 때 제수 용품에 세금을 부과하면 국고가 가득 차게 될뿐더러 백성들도 수입이 늘어 불평이 없을 것입니다.”
명분과 실리를 갖춘 정책을 환공은 그대로 집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 곶간은 다시 풍성해졌다. 생산과 소비가 늘면서 백성들의 삶도 윤택해졌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 꼭 그 꼴이다. 대책 명칭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임차인(세입자) 지원 확대와 임대인(집주인)들에 대한 과세 강화가 골자다. 임차인의 세 부담을 줄여주고, 임대인에게는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점은 전·월세 과세에 찍혀 있다. 과세 사각지대에 있던 임대인에게 세금을 물려 세수 증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실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임대인에게서 걷을 수 있는 세금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예컨대 전세보증금 10억원을 받는 2주택 보유자에게서 징수할 수 있는 임대소득세는 12만원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임대소득 신고가 얼마나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반면 가까스로 살아나던 주택시장은 또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세금에 대한 우려로 전·월세 놓던 집을 팔아버리는 게 낫겠다는 집주인들의 볼멘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시장에는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매수세는 뚝 끊긴 상태다.
월세 세입자 역시 불안하다. 당장 오를 월세가 걱정이다. 집주인들이 내야 할 세금만큼 월세를 올려받을 테니 말이다.
전세시장은 또 어떤가. 정부가 전세에도 과세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전셋값이 들썩거린다. 치솟는 전셋값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방침이 결국 애꿎은 전·월세 세입자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소득이 있으면 과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론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정책의 타이밍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취득세 영구 인하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하면서 집을 사라고 세금을 깎아주던 정부가 이번에는 갑자기 없던 세금을 만들겠다고 하니 시장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설익은 정책으로 인한 피해자는 정책을 만드는 정부도 아니고 이를 법제화하는 정치권도 아니다. 정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온 국민이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시장 침체에 따른 거래 두절은 곧 세수 감소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작은 것(임대소득세)을 얻겠다고 더 큰 것(취득·양도세)을 잃어버린 꼴이다. 설익은 대책으로 되레 시장만 죽인 셈이니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인두세 징수 대신에 제사를 장려한, 그래서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긴 관중의 지혜가 참으로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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