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2012

비단물결 꽃물결이 쌓고 허무는 항구, 그 건들대는 說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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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물결 꽃물결이 쌓고 허무는 항구, 그 건들대는 說法
최재목의 유랑・방랑・인문학(21)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물결을 바라보며(1)

2012년 08월 27일 (월) 14:58:06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ditor@kyosu.net

스위스 루체른의 한 귀퉁이 바위에 새겨진, 거의 죽어가는 사자처럼, 피로한 몸을 열차 한 구석에 스윽 기댄다. 아쉬움이 밀려온다. 스위스의 이곳저곳을 채 음미하지도 못한 채 떠나는 마음은, 송골매가 대추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키듯, 말 그대로 골륜탄조(鶻圇呑棗)다. 맘속에다 그냥 대추씨처럼 알프스의 풍광을 걸어놓고, 오래 바라보기로 하고, 소설가 뒤마가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도시라 했던 베네치아로 향한다. 왜냐? 나도 살아 있을 때 꼭 가보고 싶었다.

비내리는 알프스의 산자락 풍경. 어느 곳이나 참 아름답다. 사진=최재목

인간은 머물 항구가 없고, 시간은 쉴 기슭이 없다 했지. ‘떠도는 몸이라고 사랑마저도 내 마음 내 뜻대로 하지 못하고 한없는 괴로움에 가슴 태우며’라는 노랫말을 되뇌며. 알프스 그 흰 千의 얼굴 千의 가지 끝을 다 더듬지도 못한 채 아쉽게 돌아설 때, 그건 꼭 세계의 중앙에 솟아 있다던 수메르산 같다는 느낌. 유럽의 須彌山이랄까. 金昌翕은 金剛山 須彌臺에서 이렇게 읊었지. ‘꽃을 따려면 백 척의 가지 끝까지 더듬어야 하고(摘花須窮百尺枝), 구슬을 찾으려면 구중의 깊은 못을 다 뒤져야 하거늘(探珠須沒九重淵), 산에 올라 깊숙이 들어서지 않으면(登山不深入), 묘한 지경을 어찌 다 볼 수 있으랴.(妙境胡得焉)’

게슴츠레 뜬 눈썹 가로 걸리는, 물이 찰랑대는 도시 베네치아(Venezia). 영어 이름은 ‘베니스(Venice)’,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 해 북쪽 해안의 항구 도시다.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 현재는 건축과 예술과 운하의 협연으로 독특한 낭만적 풍광을 만들어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 116개의 섬들이 409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고, 거기 主演은 뭐니 뭐니 해도 ‘곤돌라’다. 미로 같은 운하 그 구석구석을 血球처럼 떠돌며, 도시의 활기와 낭만, 미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네치아-베니스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게 너무 많다. 친근하게는 오세영의「베니스의 조선상인」과 그 주인공 안토니오 꼬레아, 루벤스의「한복 입은 남자」. 좀 더 더듬어 가면,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극「베니스의 상인」. 또 토마스 만의「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그 영화 속에 삽입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

곤돌라가 있는 베네치아 풍경 사진=최재목

내가 베네치아에 가고 싶다고 맘먹은 건 몇 해 전이다. 홍콩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마카오로 발길을 돌려 그 구시가지를 둘러본 뒤, 베네치안 호텔에서 곤돌라를 탈 때였다. 인공의 하늘과 푸른 운하, 거기 유럽풍의 여자 뱃사공이 감미롭게 배를 저으며 불러주던 산타루치아. 아, 그만, 베네치아에 필이 꽂히고 말았지. 산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바다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들뜬 터. 항구에 서면 뜬금없이 가슴이 설레고. 어릴 적 동네 형들에게 들었던「기타 치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아직도 흥얼대고 있으니. ‘비단물결 꽃물결이 넘실대는 수평선/나는야 기타 치며 노래하는 마도로스/아롱다롱 네온불빛 돌아가는 이 항구여/잘 있거라 정든 항구야 정든 님도 굿바이다.’ 그래, 나는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던 거다. 그 때는. 마도로스라 - 뱃사람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matroos’에서 온 말이니, 어차피 핏줄은 유럽이다.

어느덧 기차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들어서고, 밀라노에 내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베네치아로 향한다. 산타루치아역에 내려 예약된 민박집으로 가 여장을 푼다. 다음날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했다가 순환 수상버스(바포레토)를 탄다. 이곳저곳 주요지점을 통과하며 손님을 내려주고 싣는 배. 차보다도 훨씬 더 운치 있는 편리한 교통수단임을 느낀다. 운하를 따라 도는 이 순환버스를 타고 가면 내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유리 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에 닿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시간을 내어 물결과 손잡고, 흔들흔들 곤돌라도 타봐야. 우리의 달구지가 ‘덜거덕 덜거덕 삐거덕 삐거덕 흔들흔들 흔들려가’듯이, 곤돌라는 흔들려야 제 맛. 그래, 천성이 건달처럼 건들대는, 그게 풍류지.

물결에 출렁대는, 물결의 도시 베네치아. 곤돌라가 있는 베네치아 풍경 사진=최재목

알 수 없이 흔들리는, 낭만으로 울렁대는 울렁증을 앓는 도시. 물결이 미로인 운하를, 도시 전체를, 온 우주를 쥐고 흔드는 듯 착각이 엄습할 때, 거기, 그 장단을 맞춰주며 곤돌라는 신명이 난다. 얼쑤! 고요한 116개의 섬들을 쥐고 흔들면, 낯익은 것들도 낯설어지며, 모두 오브제로 변해간다. 신체의 감각들이 그로테스크한 선율 속에 말려들면서, 삶 저면에 숨은 유랑과 유동의 미적 유전인자들이 브레인스토밍 돼 나온다. 곤돌라는 저런 물결의 실체를 알기나 할까. 모두 출렁대면서 고요히 장엄하고, 요란하면서 티 냄 없이, 티 없이 살고 지는 물결.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니, 고요히 모든 허상이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곤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나드는, 저 출렁이는 혼돈의 혀에서 說法이 살아난다.

물결을 쳐다보면 그게 숨결 같고 살결 같다. 아니 무덤이고 요람이다. 울렁거림, 뭉클거림, 설렘, 레오나르드 다빈치는『수첩』에 이렇게 썼다지. ‘문득하던 일을 멈추고 벽에 묻은 얼룩, 타고 남은 재, 구름, 진흙 같은 것을 바라보노라면 거기에서 참으로 멋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물결, 그건 뜬금없는 발상법이다.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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