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독일인에게서 배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 '유럽의 성장엔진 독일'이라는 특집기사를 실었고, 미국의 타임지도 '유럽을 위기에서 구한 나라는 독일'이라고 평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닛케이비즈니스가 독일의 안정적 성장 모델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일을 배우자는 열풍이 일고 있다.
은퇴 세대들에게 독일이란 마치 '눈물 젖은 빵'과 같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 난 위기상황에서 독일행을 결정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설은 땅으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현대판 독립투사처럼 '대한 늬우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이들이 고국으로 송금한 외화는 경제개발과 차관도입의 밑천이 되었던 것이다.
외화를 벌겠다고 선발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로 향한지 어언 50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독일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책의 저자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두 가지를 거론한다.
첫째로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만이 홀로 유럽 전체를 먹여 살릴 만큼 엄청나게 잘나가고 있고, 둘째로 독일의 성공이 독일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최근에 불거진 철도노조의 파업사태로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던 저자는 국내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었다.
인생의 개화기인 이삼십대에 어린 두 딸과 함께 머물었던 독일은 그녀에게 제2의 고향인 셈이고 자신의 호연지기를 키운 곳이기도 하다.
독일의 유치원은 우리나라처럼 공부를 가르치고 학습 능력을 키워 주기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 적응 훈련을 하는 곳에 더 가깝다.
몇 년 전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로버트 풀검의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독일 유치원은 정말 이 말에 꼭 들어맞는다.
독일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로에서든 거리에서든 교통신호를 잘 지키고 줄을 잘 서며 휴지 한 조각도 함부로 버리지 않을 만큼 질서를 잘지키는 민족이라는 점이다.
이 질서의식은 프로이센의 군사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군대의 덕목인 상하 간의 철저한 권위와 복종, 준법정신, 협동정신, 훈육과 규율 등이 국민의무교육을 통해 전 국민에게 확산된 것이다. 지금도 독일인 하면 '독일 병정' 이미지가 연상된다.
준법정신은 오늘날의 독일 교육에서도 매우 중시된다. 유치원 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놀이 후 정리, 정돈, ○차례 지키기, ○하루 일과표 따라하기 등 ○생활리듬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버릴 휴지통이 없으면 쓰레기를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닌다.독일의 운전자들은 빨간불이 켜지면 보통 정지선까지 차 한 대는 넉넉히 들어갈 만큼 빈자리를 두고 멈춘다. 이는 신호등의 위치와 높이가 정지선을 어기면 신호가 보이지 않도록 설치했기 때문에 운전자가 정지선을 지키도록 미리 씨스템화돼 있다. 그런데, 한국이면 가능할까? 오죽했으면 예전에 TV 연예 프로그램에 '양심냉장고'가 등장했겠는가?"
아침 시간은 입에 황금을 물고 있다(Morgenstunde hat Gold im Munde)"이는 독일인이 가장 좋아하는 속담 중 하나이다. 독일의 근로자들은 보통 아침 여섯 시 반에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초등학교 1교시도 8시부터다. 대학생 첫 강의는 아침 7시이다. 이러니 대부분 새벽 4~5시에 기상해서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 3~4시 되면 칼퇴근을 한다. 근면이 몸에 밴 독일인은 일찍 퇴근했다고 쉬는 법이 없다. 정원을 가꾸거나, 차를 손질하고, 취미 생활을 하면서 하루를 길게 사용한다.
독일인의 전형적인 품성은 ●근면성, ●정확성, ●철저성 등이 대표적인 세 가지다. 사실 이러한 정신은 프로이센 정신이다. 프로이센 군대를 유럽 최정예군으로 육성한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군사문화가 오늘날까지 독일인의 DNA에 남겨진 탓이다. 한국의 육아 도우미는 아기도 돌보고, 산모도 돌보고, 집안 청소를 하는 등 만능이다. 독일 사람들에게 이런 도우미를 기대하면 안 된다. 육아 도우미를 신청할 때 아기 목욕시키기, 젓병물리기, 모유수유 지도, 안아주기 등으로 신청서 항목에 동그라미를 치도록 돼있다.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도우미가 절대로 돌봐주지 않는다.독일인들은 모든 일에 철저히 대비하고 계획한다. 2002년 저자는 시베리아횡단철도로 모스크바에서 북경까지 열차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이때 만난 70대 독일 할머니는 뮌헨에서 출발해 홀로 여행 중이었다.
할머니는 은퇴후 남편과 함께 세계 여행을 계획하고 40년 가까이 돈을 모아 실행에 옮겼는데, 남편과 사별해도 이미 세워 둔 계획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독일인의 보수성이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유의 문화와 전통, 건축물 등 유무형의 유물들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습관에서다. 문화재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베를린 번화가에 반파된 모습의 추모교회, 이는 1895년 빌헬름 1세가 독일통일을 기념해 완공했는데 1943년 11월 대공습으로 큰 피해를 당했다.원형 그대로 복구할 수도 있었지만, 후세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붕괴된 모습 그대로 재건했다.
우리는 어떤가? 도시개발이란 미명하에 도성 한양의 오랜 건축물들이 마구 파헤쳐지고 없어졌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가 아닐까?
독일의 경우 산학(産學)병행 교육제도가 가장 주목받는다. 세계 최고의 기술대국이 되고 최고봉의 장인정신을 자랑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10대 시절부터 직업 현장에서 도제교육을 통해 연마한 실용 기술은 독일에서 대접을 받는다. 한국도 지금까지 이처럼 짧은 기간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이다.
독일에서는 유치원 어린이들부터 사은품은 공짜가 아니라 물건값을 인상하는 주범이라는 교육을 받기에 섣불리 사은품을 주다가는 피고발 될 수 있음을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는 '라인강의 기적'을 경제발전에 비유하지만 정작 독일은 이말을 21세기에 들어 사용하는데, 그것도 오염에 찌들었던 라인강의 환경이 회복되어 물고기, 곤충, 새들이 돌아오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독일 간 한국 유학생의 현장 리포트라는 부제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통독 전, 베를린에 놀러가 뮌헨산'바이첸 비어' 를 주문했다가 주변 청년들에게 봉변당할 뻔했던 일이나 '남성데이'(남성 동성애자를 위한 날)에 혼탕사우나에서 뭇 남성의 추파를 받았던 저자의 남편 등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해준다.물과 석유 한 방울 아껴 쓰고, 저축을 실천하는 독일인의 삶의 철학과 정신을 통해 경제위기 속에서도 독일의 경제 성장이 군계일학 처럼 보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씨를 뿌리지 않고선 가을걷이가 결코 없다. 단순한 진리를 보여준다. 또한, 독일 남자들의 자동차 사랑, 독일인의 자랑 괴테와 베토벤, 그리고 독일의 대표음식 맥주와 쏘시지 등의 이야기들도 만난다. 장기간의 저성장 시대를 경험하면서 위기에 강한 독일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성공 코드는 미래 한국의 통일과 성장, 그리고 행복에 대해 깊은 성찰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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