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2013

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7 - 경세의 이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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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고전에 길을 묻다 - 경세의 이치 ③
古今에 가렴주구의 핵심은 혹독한 징세가 아니라 불공평한 과세다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2013-11-27 20:21:48 / 본지 22면

조사(왼쪽), 평원군
- 조사(趙奢)는 평범한 세리 출신에서 대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 ?~서기전 260)은 병법에 매우 밝아서, 조사도 아들을 이기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조사는 유언에서 자신의 아들을 결코 장수로 삼지 말라고 만겼다. 이론으로만 병법을 익힌 장수는 반드시 실제 전투에서는 실패하고 만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데도 당시 조 나라의 임금이던 효성왕(孝成王)은 조괄을 대장군으로 출정시켰다. 전투에서 패한 조괄은 사망하고 45만여 명의 군사는 생매장되었다.

- 평원군은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으로. 이름은 승(勝)이다. 맹상군·춘신군·신릉군과 함께 전국사군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세 차례에 걸쳐 재상이 되었으며, 현명하고 붙임성이 있어 식객 3000명을 먹였다고 한다. 식객 모수(毛遂)가 스스로를 천거하였다는 모수자천(毛遂自薦)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이야기가 유명하며,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을 폈던 공손룡(公孫龍)도 평원군의 식객이었다.

'가정맹어호'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 민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노 나라를 떠나 제 나라로 가던 길에 어느 험한 산 속을 지나다,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아낙을 보았다. 의아해진 공자가 자로(子路)를 시켜 사연을 물으니 호랑이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잡아먹고 이제 아들마저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공자가 "그런데도 왜 이 깊은 산중을 떠나 도성으로 가서 살지 않느냐?"고 묻자 여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도 이 산중에는 탐관오리의 가혹한 세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고 하였다. '예기(禮記)'의 '단궁(檀弓)' 편(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가정(苛政)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가혹한 정치라는 뜻이지만, 대개는 가혹한 세금을 이르는 말로 해석한다. '가렴주구(苛斂誅求)'와 서로 통하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에 관한 이야기는 참 많다. 그 가운데 한 두 가지만 들어 보자면, 미국의 언론인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생에서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금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라고 하였다. 나랏살림을 맡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말이다. 재정을 담당하는 프랭클린의 초상이 미국 지폐 가운데 가장 단위가 큰 100달러 지폐에 오른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무장관이었던 콜베르는 더 적나라한 이야기를 남겼다. "세금을 거둘 때는 거위의 털을 뽑듯이 하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거위의 털을 조금만 뽑아서는 쓸 데가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뽑으면 거위가 죽어버린다는 뜻이다. 콜베르는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정부가 직접 산업을 육성하고 재정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 인물이다. 중앙집권적이고 국가주도적인 경제정책을 일컫는 콜베르티즘이라는 말도 그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거위의 털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도 콜베르라면 충분히 할 만하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거위의 털 운운 하면서, 국민들을 털을 뽑기 위해 기르는 거위 쯤으로 생각한대서야 참으로 황당하고 민망한 일이다.

전국시대의 조(趙) 나라는 한(韓) 나라, 위(魏) 나라와 함께 춘추오패 가운데서도 첫 손에 꼽혔던 진(晉) 나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진(秦) 나라의 침략으로 망하였으나 그 전에는 전국칠웅의 하나로 불린 강국이었다.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은 조 나라의 여러 장수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가장 중심된 인물은 염파, 인상여, 그리고 조사(趙奢)이다. 조사는 본래 조 나라의 세금 담당 관리였다. 그런데 한 번은 왕의 아우인 평원군(平原君, ?~서기전 251)의 집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 이에 조사는 법에 따라 평원군의 집사 아홉 명을 사형에 처해버렸다. 평원군이 진노하여 조사를 죽이려고 하자, 조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공은 조 나라의 귀공자이십니다. 지금 공의 집에서 공과 사를 올바로 받들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국법은 흔들리고, 국법이 약해지면 나라도 약해지게 됩니다. 나라가 약해지면 제후들이 병사를 모아 침범할 것이고,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키면 조 나라는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공께서 이와 같은 부를 누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대와 같은 귀하신 분이 공무를 받들어 법대로 행하시면 위아래가 다 공평하게 되고, 위아래가 공평하면 나라가 강해지고, 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 또한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대왕의 친족이시니 천하에 그 누가 공을 가벼이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평원군은 조사가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를 등용하도록 천거하였다.

이렇게 조사가 재정을 관장한 이후부터 조 나라의 세금은 매우 공평해졌고, 백성들은 부유해졌으며, 국고는 언제나 가득 찼다고 한다. 나중에 조사는 장군으로서 조 나라를 지키는 데도 큰 공을 세운다. 당시의 법이 어떠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아홉 사람을 처형한 것은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점을 막론하고, 조사도 훌륭한 인물이지만 그를 천거한 평원군도 못지 않게 훌륭한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이 폭풍우를 만난 조각배마냥 우왕좌왕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재원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재원이 부족하다면 세금을 더 거두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또 증세는 결코 없다는 것이 이 정부의 원칙이라고 한다. 정부가 원칙과 약속을 중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 증세는 없다는 원칙은 무겁고, 복지를 늘이겠다는 원칙은 가벼운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가혹한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처럼, 세금을 늘이면 그만큼 국민들의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말도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막연히 국민의 부담을 핑계 댈 일이 아니라, 복지를 위해서 누가 얼마만큼 더 부담해야 옳은가를 언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국민들과 의논해 보았는지 물어 보고 싶다. 정부나 경영자단체 등에서는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서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평균 세율의 이야기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일수록 특별세율을 적용받고 있어서 세율이 낮고,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중소기업의 세율은 높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령 예를 들어 우리나라 법인의 총소득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지만, 정작 삼성그룹이 내는 세금은 10%를 조금 넘는 데 불과하다. 중소기업들의 법인세율이 18% 이상인 데 반해 삼성그룹은 16% 수준의 법인세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이유는 그저 세금이 많고 적음 때문이 아니라 권세 있는 이는 내지 않고 힘없는 백성만 그 부담을 모두 짊어지기 때문이다.

# 흰 말은 말이 아니다, 불의의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공손룡(公孫龍)은 조(趙) 나라 사람으로
명가 가운데
이견백파(離堅白派)의 중심인물이다.
저서로는 모두 14권의 '공손룡자(公孫龍子)'를
남겼다고 하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6편뿐이다.
"흰 말은 말이 아니다",
"단단한 것(堅)과 흰 것(白)은 다르다"
등의 명제를 내세웠다.
주(周) 나라가 망한 때부터 진 나라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때까지를 춘추전국 시대라고 부른다. '춘추(春秋)'는 공자가 편찬한 역사서의 이름이고, 전국이라는 말은 한 나라 유향(劉向, 서기전 79~서기전 8)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사마천은 '사기'의 맨 뒤에 붙인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큰 여섯을 구분하고 이름붙인 것은 바로 자신의 선친인 사마담이라고 적고 있다. 이 여섯은 바로 유가·도가·법가·묵가·명가·음양가이다. 더러는 종횡가와 농가와 잡가를 더해 구류(九流)라 부르기도 하고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쓴 손무(孫武)와 그 제자들을 병가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낯선 것이 명가인데, 이름과 실재를 구분하는 일을 학문의 근본으로 하면서 지식의 상대성과 한계성을 주장한 사람들이다. 명가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조(趙) 나라 출신의 공손룡(公孫龍, 서기전 320~서기전 250)으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을 주장하였다. 말이라는 것은 형태를 가리키며, 희다는 것은 색을 가리키므로 동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장자(莊子)는 명가를 한낱 궤변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였으나 명가의 진정한 의도는 명(名)과 실(實)의 불일치를 극복함으로써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는 공자가 정치를 한다면 가장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한 정명(正名) 사상과도 통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정명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면서 그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실은 군국주의 시대 어느 일본 법학자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이다.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말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해도 백성은 그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 국민들이 못난 정치인들의 허물을 다 감내해야만 할까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것이 지난 군사정권 시절의 문제만이 아닌 듯해서 하는 이야기다. 흰 말은 말이 아니고 악법은 법이 아니며 불의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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