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2013

[국회보 2013년 6월호]사자성어에 담긴 정치 ⑥주중적국舟中敵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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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보 2013년 6월호]사자성어에 담긴 정치 ⑥주중적국舟中敵國
국회사무처 | 기사입력 2013-06-05 09:49

위정자(爲政者)의 덕이 한 나라에 미치는 영향

주중적국舟中敵國’이란 덕을 닦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언제 보았냐는 듯 갑자기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주중지인 진위적국(舟中之人盡爲敵國)’의 줄인 말이다. 그러기에 사서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덕이란 자기 몸을 윤택하게 한다’고 하였고, 공자는 ‘덕이란 외롭지 않아서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맹자는 ‘덕의 유행이란 역마로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덕에 대한 정치적 효과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위정자가 어진 정치를 실행하면 백성들이 기뻐하기를, 마치 거꾸로 매달린 몸이 사르르 풀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일은 옛사람의 반밖에 아니 하고서도 공은 그 갑절만큼 거둔다는 것이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참으로 위정자에게 와 닫는 말이자 귀감의 말씀이다. 여기에서 중국 옛 역사를 통해 위정자가 베푸는 덕이 한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춘추전국시대 명장 오기에 얽힌 이야기 – ‘임금이여, 덕을 쌓아라’

중국 춘추전국 시대 명장으로 꼽히는 오기(吳起)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위나라 사람으로 용병술에 능했으며 일찍이 공자의 제자인 증자에게 배우고 노나라 왕을 섬겼다. 그러다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으려 했는데, 오기는 자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 하여 두 나라 사이에서 의심을 받게 된다. 이에 오기는 자기의 아내를 죽이고 제나라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진정 사람의 도리로 본다면 해서는 아니 될 행동이었으나, 명성을 얻기 위한 오기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노나라는 오기를 장군에 임명했고 오기는 군사를 출동시켜 제나라를 공격한 끝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오기는 노나라에서 자기를 헐뜯은 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노나라 왕 역시 자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그만 노나라를 떠나야만 했다.

이에 오기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섬기려 하던 차, 문후가 스승으로 모셨던 이극(李克)의 추천으로 위나라의 장군이 되어 진(秦)나라를 공격, 5개의 성(城)을 빼앗는 등 큰 전과를 올린다.

그런데, 오기는 장군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계급이 가장 낮은 졸병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누울 때도 졸병들로하여금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였으며 행군을 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꼭 자기가 챙기는 등 모든 고통을 졸병들과 똑같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사 중 등창 병이 난 자가 있자, 오기가 친히 그의 아픈 부위를 입으로 빨아주었다. 그러자 그 병사의 어머니가 소식을 듣고 통곡하였다. 통곡한 이유에 대해 “일찍이 장군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준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바람에 적진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오. 우리 아들도 혹여 지 아버지와 똑같이 그럴까봐 그래서 이렇게 슬피 통곡을 하는 거라오.” 지당한 하소연이었다.

한편 문후는 오기가 군사를 다루는 것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공평하여 군사들에게 마음을 얻고 있다고 여겨 바로 서하태수(西河太守)로 삼아 진나라와 한나라에 항거하도록 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문후가 죽고 그의 아들 무후(武侯)가 대를 잇게 되었다. 하루는 무후가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서쪽 하수를 내려가다가 중류에 이르자 오기를 돌아다보면서, “아름답다. 산과 하수의 견고함이여! 이는 바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한 마디로 위나라의 국경이 튼튼하다는 것을 자랑삼아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기는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변했다.

“나라의 보배란 임금이 베푸는 덕에 있는 것이지, 결코 지세가 험준한데 있지 않습니다. 임금이 덕을 베풀지 않으면 국경이 아무리 견고해도 나라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만약 왕께서도 덕을 닦지 않으신다면 이 배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에 경험이 적은 무후에겐 뜻밖에 들어본 금석 같은 말이었지만 “옳은 말이오” 라며 짧게 대꾸했을 뿐이었다.

얼마 후 오기는 서하의 태수가 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때를 즈음하여 위나라에서는 정승의 자리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그 자리에 전문(田文)이란 사람을 앉혔는데, 이에 대하여 오기는 기분이 언짢았던지, 전문더러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과 나와 그 동안에 쌓은 공로를 비교하고 싶은데, 좋겠소?” “좋소. 한 번 해봅시다.” 이렇게 하여 오기와 전문 두 사람은 설왕설래 몇 차례를 논쟁하였는데, 끝내 오기가 꼬리를 내리면서 “내가 당신만 못 하오” 하고 양보했다고 한다.

사실 공과에 대하여 끝까지 대립하지 않고 중도에 흔쾌히 양보하는 오기의 결단으로 보아 장군치고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혹자는 오기더러 잔인박행한 사람이라고 혹평한 적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래도 아성(亞聖)의 한 사람인 증자의 제자였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맹자 권3 공손추(公孫丑) 상 및 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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