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2003

[매경포럼] 부동산 잡아야 지갑 열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0326095

[매경포럼] 부동산 잡아야 지갑 열린다
매일경제 | 기사입력 2003-11-05 17:42 | 최종수정 2003-11-05 17:42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편에 역린지화(逆鱗之禍)라는 말이 나온다. 용(龍)은 순한 짐승이지만 목 근처에 거꾸로 나 있는 비늘(역린)을 건드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는 얘기다.

무슨 소리를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호인조차도 어떤 특정한 부분을 지적당하 면 못 견뎌하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역린'이며, 요즘 말로는 핵심 콤플렉스로 불린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놓고 말이 많다. 지나친 규제가 부동산 시장을 무너뜨리 고 소비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해 겨우 지탱해가는 한국 경제의 '역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부동산 값 급등은 소비 진작은커녕 오히려 소비 침체 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 과열과 내수 경기 급랭은 한국 경제의 골치 아픈 두 가지 화두다. 원래 정답이 없는 게 경제 정책이라고 하지만 열탕은 식히고, 냉탕은 데우는 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학 원론상 주식이나 부동산 값이 오르면 소비도 늘어난다는 게 통설이다. 자산가치가 높아지면 예전보다 부유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소비지출도 따라 서 늘린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다.

그러나 최근 1년 새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값이 많게는 50% 이상 급등했지만 소비는 정반대다.

지난해 11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백화점 매출은 1년이 지나도록 회복 기미가 없다. 추석 직전 반짝 증가세를 보였던 매출이 10월 들어서는 다시 두 자릿수 까지 감소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대목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주택보유자 가운데 ' 부동산 값이 오르면 소비를 늘리겠다'고 답한 사람은 15.4%에 그쳤다. 거꾸로 무주택자 중에서는 '집값이 뛰면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더 늘리겠다'는 응답자가 21.9%에 달했다. 부동산이 뛰면 오히려 소비를 줄이겠다는 계층이 산 술적으로 더 많았다.

반면 주가가 오르면 소비 지출을 늘리겠다는 사람이 2001년 조사 때 전체 응답 자의 34.5%, 지난해에는 22.3%를 각각 차지했다. 주가가 오르면 여의도 식당가 부터 활기를 띨 정도로 소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대다수 한국인이 저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다. 부동산 값이 뛰면 서민들은 집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해야 하므로 당연히 쓸 돈이 없다. 집이 있더라도 1가구 다주택자가 아닌 이상 집값 상승은 평가이익 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 소비를 늘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집을 장만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다보니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은행 이자를 갚느라 월급의 절반을 털어넣어야 하는 샐러리맨도 적지 않다. 올 6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전 금융기관을 통틀어 439조원에 달한다. 가구당 평균 4000만원 정도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10월 말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 246조원 가운데 60%인 147조원이 주택담보 대출이다. 나머지 40%는 신용대출이지만 이 부분도 전세자금이나 아파트 분양 대금 등 부동산에 관련된 대출이 상당액을 차지한다.

또 여유자금을 갖고 있는 부유층도 호시탐탐 부동산에 투자할 기회만 엿보고 있을 뿐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 분당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에 청약 금만 6000억원(1인당 2000만원) 이상이 몰리는 것만 봐도 부동산 대기자금이 얼마나 많은지를 가늠케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부동산 투기보다는 차라리 주식 투기가 국가경제에는 더 낫 다.

혹자는 부동산 값이 떨어지면 소비가 더 위축되고 경기회복도 어려워지기 때문 에 정부가 부동산을 너무 세게 흔들어대서는 안된다고 걱정한다.

물론 외환위기 때처럼 집값이 폭락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장에서 이런 조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부동산을 연착륙(Soft-landing)시켜야 소비도 살리고 경제를 일 으켜 세울 수 있다. 돈이 부동산 대신 산업자금으로 흐를 수 있도록 자본시장 에 대해 각종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한국 경 제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윤영걸 부국장 겸 유통경제부장 yy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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