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중국인 회 맛 알았다… 국내 수산물가격 들썩인다
中 소득 늘자 식료품 '블랙홀'돼… 육류 이어 수산물까지 수요 급증
국내 공급량 줄면서 물가 자극
수출만 하던 오징어 中, 30% 내수로 전환
"여자 친구와 데이트할 때는 일식당 가서 참치회나 연어초밥 정도는 먹어야 체면이 섭니다. 베이징에서 이런 생선들은 부(富)의 상징이거든요."
최근 중국 출장을 다녀온 마창모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베이징에서 만난 20대 증권맨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중국 사람들은 날것을 먹지 않는 줄 알았는데, 값비싼 회를 찾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회 맛을 알게 되면서 각국의 수산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마 박사의 중국 출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베이징·광저우·칭다오·다롄 등 연안 도시 곳곳에는 일식집과 대형 수산물 요리점이 즐비했다. 롯데마트·자스코·CP로터스 등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에는 참치·연어·킹크랩·바닷가재 등 없는 게 없었다고 한다. 마 박사는 "중국 주부들과 얘기를 해보니 1~2년 전만 해도 연어, 참치 같은 걸 별로 안 먹었는데 요즘은 자주 먹는다고 했다"며 "이런 속도라면 중국이 세계의 수산물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3억 중국인의 식탁 메뉴가 바뀌면서 세계 식품시장이 '잉여(剩餘)의 시대'에서 '부족(不足)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는 세계 식료품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결국은 우리나라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쌀 3분의 1이 중국인 입으로
지난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품가격지수가 2월에 2.2% 올랐다"고 발표했다. 작년 6월 이후 8개월 연속 상승세이자, 이 지수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최고치다. 밀 가격은 국제 상품시장에서 최근 1년 새 58% 올랐고 옥수수는 87% 급등했다. 기상 이변으로 작황이 부진한 탓도 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나는 식품 수요를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 수요가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신흥국의 소득 확대로 식생활이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중심에 13억 인구의 중국이 있다. 그들의 식탁 메뉴를 보자.
1980년 당시 중국인은 달걀을 일주일에 하나꼴로 먹었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는 거의 하루에 하나꼴로 먹는다. 달걀 소비량이 6.5배 늘었다. 같은 기간 우유와 소고기 소비량은 12배, 중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돼지고기 소비량도 3배 늘어났다. 1인당 하루 수산물 소비량도 4.9배(1980년 14.37g→2007년 71.32g) 늘었다. 우리나라(144.9g)나 일본(166g) 수준은 아니지만 미국(67g)과 유럽(56g)의 수산물 소비량을 앞질렀다.
중국인의 하루 곡물 소비는 430g에서 417g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쌀의 3분 1가량을 중국인이 먹어치우고 있고 밀은 17%(세계 소비량 1위), 옥수수는 20%(2위)를 소비한다.
중국인들의 육류 소비가 늘면서 소·돼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료용 곡물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다. 중국에서 가축용 사료로 쓰인 곡물은 1980년 6779만t에서 2007년 1억2019만t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국인, 갈치·고등어도 먹기 시작했다
중국이 세계 식료품 시장의 '블랙홀'이 되면서 국제 식료품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우리나라의 장바구니 물가도 들썩이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던 오징어·갈치·고등어 같은 수산물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홈플러스 수산물 구매담당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로 중국인들 입맛이 확 바뀌었다"며 "특히 오징어, 갈치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격 상승 우려가 크고 고등어도 구워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꽃게는 중국 내륙 위구르 지역으로 물량이 들어가는 바람에 국내에서 수입해 들여오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그동안 중국은 오징어를 주로 수출만 했는데, 요즘은 생산량의 30%를 내수 소비하고 있고, 인도 동부연안에서 생산되는 갈치는 싹쓸이 수입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요즘 오징어는 1㎏당 2800원 정도로 전년(1800원)보다 50% 이상 올랐다. 고등어 한 마리는 4000원으로 1000원 올랐다. 갈치는 2년 전 가락시장에서 1㎏당 1만6400원에 팔렸지만 요즘은 2만4000원 정도다. 연어는 1㎏당 2만9000원으로 작년보다 20% 올랐다. 어획량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중국의 소비량이 늘면서 국내 공급량이 줄어든 요인도 있다.
우리나라의 수산물 자급률은 2008년 현재 78.5%로, 모자란 부분은 주로 중국·러시아 등에서 수입해왔다. 그런데 중국의 내수 소비가 급증하면서 국내에 '피시플레이션(fishflation)' 우려가 나온다. 피시플레이션이란 생선(fish)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생선값 급등을 말한다.
◆세계 곡물시장, 잉여에서 부족의 시대로
중국인의 식생활 변화는 세계 식료품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유럽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는 "1950년 이후 곡물가격은 원활한 공급 덕분에 60년 가까이 장기 하락세를 보였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국제 곡물가격의 60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농기계 보급과 관개시설 개선 덕분에 단위 면적당 세계 곡물 생산량은 지난 30여년간 62% 정도 늘어났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만으로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올해 곡물 생산은 수요에 비해 5억3000만t 정도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화년 연구원은 "중국 등 신흥국의 곡물 소비 증가는 앞으로 5~10년간 지속되고 기상 이변 등으로 공급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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