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1990

[해설] 美 예산위기, 연방정부 기능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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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美 예산위기, 연방정부 기능마비
연합뉴스 | 기사입력 1990-10-08 08:11

공화의원들 叛亂, 부시대통령 권위 실추

(워싱턴=聯合) 李文鎬특파원 = 세금인상과 복지삭감을 통한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 의회지도자들간의 91회계연도 예산합의안이 하원에서 부결된데 이어 부시대통령이 의회의 잠정예산집행안을 거부함으로써 야기된 미국의 예산위기는 연방정부 기능을 마비시킨채 부시대통령에게 집권이래 최대의 정치적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는 공화당소속의원들이 대통령에게 대거 반란표를 던져 발생했다는 점에서 집권 20개월에 들어선 부시대통령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지도력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으며 결과적으로 中東파병과 함께 내우외환이 겹친 양상을 노정해주고 있다.

이번 예산위기는 지난 6개월동안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 의회지도자들이 끈질긴 협상끝에 마련한 합의안을 5일 새벽 하원이 2백54대 1백79표로 부결시킨후 의회가 경과조치로 급히 성안한 향후 1주일간의 임시지출법안을 부시대통령이 묵살함으로써 발단됐다.

부시대통령은 잠정예산집행안에 서명하는 대신 연방정부기능을 6일 새벽부터 일시 정지시키는 對의회 강공책을 구사, 백악관과 의회가 정면대결하는 양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연방정부 업무정지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는 주말인 6,7일과 공휴일인 8일(콜럼부스데이)이 겹친 연휴기간동안 박물관과 국립공원, 각종 기념관이 문을 닫음으로써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는등 임시적인 일부 행정기능의 마비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나 항공통제, 체신, 경찰, 보안등 국가운영의 필수적 기능은 통상적으로 집행되고 있으며 의회의 양당지도자들은 새로운 타협안을 마련하기 위해 철야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거부는 예산편성과 승인은 본질적으로 의회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의회의 예산편성 실패를 극적으로 부각시키려는 부시流의 강공책으로 해석되고 있다.

동시에 국가대사와 자신의 선거구 인기관리의 중요도를 혼동하는 의원들의 자세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도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예산위기가 촉발됨으로써 가장 상처를 받은 사람이 다름아닌 대통령 자신임은 시간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향후 5년간에 걸쳐 5천억달러의 재정적자를 감축한다는 여야합의안은 "증세없는 적자해소"를 주장한 88년선거시의 부시공약과는 정반대로 각종 세금인상과 경비절감복지예산삭감을 통해 재정적자 감축을 추진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유류.담배.주류 등 각종 소비세 인상과 6백억달러의 의료보조금, 농업보조금 1백30억달러, 20억달러의 학자금융자등의 삭감을 포함한 여야합의안이 승인되면 거의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이 계획이 추진되면 납세자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증산층 이하의 세후소득이 2% 줄어드는 반면 납세자의 5분의1에 불과한 상대적 고소득층은 0.9%만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고소득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조세평형의 원칙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같은 내용의 합의안이 지난달 30일 밝혀지자 여론은 부시대통령의 공약위반을 비난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달후인 11월6일의 중간선거를 앞둔 현역의원들이 당지도부와 부시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게 된 것이다.

특히 선거구민들로부터 빗발치는 항의전화를 받은 현역의원들은 재선전략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반기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부시대통령은 지난 2일 이례적인 TV연설을 통해 "재정적자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국가건강을 해치고 있는 암적 존재"임을 지적하고 "미국경제의 파탄을 막기위해 불가피한 조치인만큼 합의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탓하지 말아달라"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다.

부시는 또 동요하는 하원의원들을 불러 설득하는 활동도 병행했다.

민주당지도부도 "당파의 이해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며 소속의원들에게 지지를 당부했다.

일반적으로 증세를 통한 저소득층의 가계압박, 군사비삭감, 각종 복지예산축소 등으로 집약되는 재정적자 감축안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치유하고 미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타당성이 인정되고 있으나 국민들에게는 단기적인 고통을 강요함으로써 반발을 부른 형국이 됐다.

국민들은 정치의 잘못으로 야기된 재정적자를 자신들의 주머니돈으로 메꾸려는 발상에 감정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10월1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부시대통령이 의회의 잠정지출법안을 묵살한 이상 의회에서 행정부가 수락할수 있고 의회통과가 가능한 새 타협안안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예산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이다.

현재는 연휴기간이라 연방정부 기능정지라고 해야 실질적으로 별다른 피해를 초래하고 있지 않지만 의회가 가까운 시일내에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 9일부터는 연방정부의 1백10만공무원이 근무지를 떠나 귀가해야 할 형편이어서 문제는 심각해진다.

타협안이 마련되어 정부기능이 회복되더라도 이번 예산위기가 초래할 파장은 장기적인 여운을 끌 것이 틀림없다.

강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부시가 잠정지출안에 서명을 거부했지만 이 시점에서 공화당의원들의 반란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지적이다.

20만명이상의 병력을 戰場에 파견하는 등 국가위기사태를 관리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초당적인 지지는 고사하고 소속당에서조차 반기를 든 것은 이유야 어디에 있든 부시의 리더십에 치명타를 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功過의 구별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만큼 누구에게 유리하다고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11월6일의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페르시아灣 위기에 대처하는 부시대통령의 입장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동사태와 관련해서는 부시대통령이 국내의 정치적 궁지와 예산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페灣에서 강경책을 쓰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일부에서는 대두되고 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92년의 재선전략에도 마이너스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부시의 강경방침이 또다른 타협안을 마련하려는 여야 노력에 역효과를 가져올 "불필요하고 극단적으로 현명치 못한 처사"라고 비난공세를 펴고 있으며 여론도 "근본적으로 부시의 공약위반이 초래한 결과" "대통령권한의 실추" "소속의원에 대한 조종력마저 상실한 대통령" 등 비판적이다.

공화당도 자신의 지리멸렬상을 개탄하면서 국민에게 적자해소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지 못한채 희생만을 요구한 존 수누누비서실장등 백악관팀의 전략미스를 성토하는 분위기이다.

부시대통령이 근본적으로 그동안 외교에만 관심을 둬왔지 내정에는 소홀했던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도 많다.

유럽쪽에서도 미국의 이번 예산위기를 놓고 "정치지도력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진정한 위기이며 미국에서 불황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결국 "미국경제는 종이호랑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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